외국적인 너무 외국적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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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국에를 한번 갔다와야 권위가 붙는다는 말이있다. 외국에 가는데는 갈만한 조건이 있어야 하고 거기를 가면 많은 새롭고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되고 얼마동안이나마 주위의 잡다하고 지저분한 양상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기회도 얻게 되니까 외국여행의 이점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여기에 주권위라는 「알파」가 첨가된다는 것은 확실히 한국적인 독특한 부수입이라 할 수 있겠다.
중동지구의 어디를 보고 북구의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미국 모주의 무엇을 먹는 것만도 여간 자랑이 아니라면 외국에 가서 여러사람의 박수를 받았다든지 어떠한 인식을 시켰다든지 학위를 획득하였다면 이것이 무조건 우리나라에서 그 몇곱의 가치로 환산되기를 기대하기 괴이할 것 없다.
우리의 전래의 것이든 당연히 애중하는 것 이라도 외국사람의 감정과 인준을 얻을 수 있으면 더 흐뭇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내외 귀빈이 모인 어떤 자리에서 한 한국인이 옆의 미국인 남자에게 『한국 여성을 어떻게 보십니까』하는 무모한 질문을 던지자 자기 아내와 여성들의 긴장을 의식하면서 그손이 종용히 『한 여인을 빼놓고 세계에서 한국여성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재치있고 머끈한「위트」로 받아넘긴 것은 아슬아슬한 다행이었다.
자기 아내, 동기, 딸까지도 외국인의 인식을 거쳐야만 그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는 심장은 딱한 느룻이다.
운동경기 같은 우열이 확연한 기능에서 국제적 명성을 번다는 것은 국내에서만 우수하다는 것 보다 큰 자랑이 될수 있으나 문학·예술·종교·사회사업·산업활동 등에 있어서도 반드시 그럴것인지 의문이 없지않다.
우리의 동포가 남양의 어떠한 섬에서,「아프리카」의 어떤 지방에서 사업에 성공하고 문화활동에 유조했다는 것이 고맙고 보람있는 일에 틀림없겠으나 그것이 외국에서 이루어졌기때문에 국내에서 한 일보다 더 고맙고 더 보람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우리끼리 평가에 혼선이 있고, 어떤 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를것이 있고, 높이 평가된대도 믿어야 할지 의아스러울 수도 있고, 당사자로서 자신이 생기지 않는 일들이 있겠다. 그래서 외국의 평가를 우선 믿어 보자든지 그 평가기준을 옮겨놓는 방편으로 겸손하게 남의 의견을 앞세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고루한 독존주의나 편협한 망단보다 진취성이 있고 발전가능을 시사하는 현상이기는 하나 다음 세대의 교육에 있어서나 보조가 느린 사람들과의 협화에 있어 차질이 생기지나 않을까 한다. 요원한 장래에 「한국적인 것」이 전연 없어지든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예측하고 하루빨리 소위 재래의 것을 없애는 일이 급선무 라면 몰라도 문화의 변천이 결국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이라면 지나친 외국숭상은 공연한 혼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한다. 권중휘<영문학자·전 서울대학교 총장·문박〉<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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