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덩치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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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해 전체 펀드수는 크게 줄어든 대신 설정액이 5백억원 이상인 중.대형 펀드가 많이 늘었다.

이에 따라 한국 투신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펀드의 대형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펀드의 설정액이 커지면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포트폴리오(자산배분) 구성으로 수익률을 높이고 투자위험은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내를 뜯어보면 펀드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한 소규모 펀드를 합친 경우가 많아 펀드의 대형화를 속단하기엔 이르다는 주장도 있다.

◇펀드 대형화 추세=한국투자신탁협회가 최근 발표한 '투자신탁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5백억원 이상 펀드의 설정액은 1백33조7천여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3.6% 늘어났다.

특히 설정액이 1천억원 이상인 펀드는 2000년 2백68개에서 2001년엔 3백46개, 지난해엔 4백9개로 매년 큰폭으로 늘고 있다.

펀드 단위당 규모도 3백52억원으로 전년의 2백32억원에 비해 51.7% 증가했다.

이는 관리비용 절감을 통한 효율적 운영을 위해 소규모 펀드를 합치는 회사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계약형 투자신탁(뮤추얼펀드)의 경우 외부 회계감사 제도의 도입에 따라 펀드를 여러개 운용하면 감사비용이 늘어난다. 또 펀드수를 줄이면 마케팅.인력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채권형의 경우 2000년 7월부터 채권의 시가평가제가 시행되면서 펀드규모가 커졌다. 시장이자율을 즉각 반영하기 때문에 펀드 가입시기에 따라 불이익을 보는 현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형화에 따른 논란=최근 1.2.3호식의 시리즈 형식의 펀드가 줄고 있다. 그만큼 한개 펀드를 설정해 놓고 추가로 가입하는 투자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펀드수가 많아 대형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한투신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투신사의 자산은 미국의 5%에 불과하지만 펀드수는 5천8백여개로 미국의 70%에 이른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펀드평가회사인 제로인 최상길 이사는 "판매사들이 가입 시기가 서로 다른 고객을 별도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아직 만들지 못해 가입 시기별로 같은 펀드를 잘게 쪼개는 관행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명의 펀드매니저가 관리하는 적정수준의 펀드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설정액이 너무 커질 경우 관리.포트폴리오 구성에 그만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개 채권형의 경우 1천억원 이상, 주식형의 경우 5백억~1천억원이 적정한 규모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현대투신 관계자는 "한 펀드를 여러명의 펀드매니저가 공동으로 운용하는 방식이 보편화하면 주식형이라 하더라도 1조원 이상도 쉽게 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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