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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마켓에서도 그림을 파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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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 청담동 SSG푸드마켓에 입점한 ‘프린트 베이커리’를 둘러보는 사람들. [사진 서울옥션]

서울 청담동 SSG푸드마켓. 히말라야 암염, 유럽식 하몽 등 진열품 사이에 ‘미술품(ART)’이라는 명패가 붙은 코너가 있다. 3호(27.3×22㎝),10호(53×45.5㎝ 등) 액자가 진열됐다. 근엄한 표정의 작품 관리원이 지키고 있는 일반 전시장과 달리 쇼핑 카트를 끌던 사람들이 액자를 들었다 놨다 하며 살핀다.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에서 지난해 말 개설한 ‘프린트 베이커리(Print Bakery)’다. 오수환(67)·박항률(63)· 강영민(42)·서유라(29) 씨 등 중견·신예작가들의 그림을 압축 아크릴 액자로 제작한 뮤라섹(mulasec) 기법의 아트상품이다. “빵집에서 빵 고르듯 미술품 컬렉션을 일상으로 확대하겠다”(이학준 대표)는 취지다.

 서울옥션 김기노 팀장은 “작가의 나이·경력에 관계없이 크기에 따라 9만원·18만원 균일가로 책정했으며, 작가들이 직접 감수와 서명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설에 기업체들의 대량 구매로 1000개 가까이 판매했다. 와인이나 난 대신에 그림을 주고 받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프린트 베이커리는 4월 초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점에 매장을 여는 등 유통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불황을 타개하려는 미술계의 노력이 다각화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미술품·골동품 거래에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기에 시장확대가 절박한 상황이다.

 예로 갤러리 현대는 미술시장이 활황이던 2008년 개관했던 강남점을 철수했고, 아라리오 갤러리는 베이징점과 서울 삼청점을 닫고 서울 청담점과 천안 본점에 주력하기로 했다.

 또 갤러리현대는 장욱진(2011)·김환기(2012) 회고전에 이어 올해 전시는 풍속화와 춘화로 시작했다. 전시작은 판매하지 않으며, 입장료 5000원을 받는다. 이들의 대표작을 액자에 담은 ‘기념판화’를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4개 국어 춘화첩(15만원)을 만들었다. “에디션(edition)은 따로 없지만 일종의 판화”라는 게 갤러리 측의 설명이다. 판화·사진·조각처럼 똑같은 이미지를 여러 점 찍은 작품을 ‘아트 에디션’이라 한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홍익대 판화과 김승연 교수는 “판화에는 작가의 수공이 들어가 있다. 요즘 화랑가에서 파는 건 인쇄물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옥션단 김영복 대표는 “소수 컬렉터가 주도하는 미술시장과 달리 일반인도 그림을 사서 걸어보는 맛을 알린다는 순기능은 있지만 ‘미술품’‘판화’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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