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발빠른 '一'자수비 속도축구로 변신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월드컵·한국과 스코틀랜드는 본선 32개팀 중 유난히 눈에 띄는 팀이었다. 최후방 수비수를 두는 시스템은 분명 세계적인 흐름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국 수비의 중심에는 당연히 홍명보가 있었다. 10년 동안 홍명보는 한국 수비의 핵이었고 홍명보 없는 한국축구는 생각할 수 없었다.'홍명보 같은 선수가 한명만 더 있었으면'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불과 1년 만에 바뀌었다.'홍명보 없이도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심지어 '홍명보가 있으면 곤란하겠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됐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한국 축구대표팀이 변한 것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국내 감독이었다면 과연 홍명보를 빼는 것이 가능했을까.

홍명보는 한국 수비의 대들보였다.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상대의 길목을 지키는 영리한 플레이, 그리고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 능력까지 겸비했으니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홍명보가 너무 출중하다 보니 발전이 없었다는 말도 성립된다. 수비는 항상 홍명보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양 사이드의 스토퍼는 일단 볼만 뺏으면 자기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볼을 잡으면 무조건 가운데 있는 홍명보에게 패스했고,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은 홍명보에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홍선수가 볼을 잡으면 안심이 됐고, 그의 정확한 패스는 공격의 물꼬를 트는 윤활유이기도 했다.그러나 상대편에서 볼 때 한국의 역습은 항상 한타임 늦기 때문에 수비수가 완전히 준비된 상태에서 대비할 수 있다.

또한 최종 수비수가 있으므로 상대 공격수들은 오프사이드에 대한 두려움없이 마음놓고 공격할 수 있다.

속도 축구·콤팩트 축구로 특징지을 수 있는 세계 톱클라스 축구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이 시스템을 바꿔야 했다.

히딩크 감독은 포백이든 스리백이든 일자 수비를 줄기차게 고집했고, 그 과정에서 유상철과 송종국이라는 훌륭한 대체 선수를 발굴해 냈다. 이들은 공격과 수비를 순식간에 오갈 수 있는 스피드,그리고 90분간을 끊임없이 뛸 수 있는 체력이 있다. 분명 홍명보에게는 없는 것들이다.

아직 완성단계는 아니지만 한국 수비는 변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생각도 바뀌었다.

어떤 팀을 만나도 수비 위주가 아니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한국축구는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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