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보협정 밀실 처리 논란 때 항의 표시로 사임할까 고민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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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호 01면

김황식 국무총리는 스스로를 ‘중도 저파(低派)’라고 일컫는다. 남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걸 신조로 삼고 있어서다. 또 좀체 큰소리를 내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모를 번민은 있었다. 김 총리는 “(지난해 6월) 국민들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실에서 처리한다고 보고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할 때 (내가) 사임을 할까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15일 중앙SUNDAY와 서울 광화문 총리실에서 퇴임을 앞두고 단독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다. 그는 1987년 직선제 이후 총리로선 최장 기간인 2년5개월간 일해왔다. 그런 김 총리가 용퇴를 고려했다니 깜짝 놀랄 일이다.

1987년 직선제 후 최장수, 김황식 총리 단독 인터뷰

김 총리는 “나는 지금도 그때 한·일 정보협정이 체결돼야 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일이 좌절되고,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하니까 내 나름의 항의 표시로 사임을 하루 이틀 깊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판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근무할 날이 몇 달 안 남았다고 볼 수도 있고, 국정과 국민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결국 참았다”고 밝혔다.

김 총리가 사퇴까지 고민한 배경은 뭘까. 김 총리는 협정 서명이 보류되는 과정에서 전혀 연락을 못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서명하지 말라는 정치권의 강력한 요구를 받고 외교부가 (서명을 보류하는) 그런 결정을 했던 것 같다”며 “지방 출장을 가 있었는데 연락 한마디 없고, 내 의견도 묻지 않은 데 대해 굉장히 섭섭하고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또 “나한테 상의했으면 ‘서명 강행해라,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임 중 최대 위기를 묻자 김 총리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굉장히 위기란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당시 김 총리는 장관들과 함께 국회 예결위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의원들의 질의응답이 계속돼 내가 예결위원장에게 ‘국방부 장관은 원위치로 가서 대비하게 해야 한다’고 항의했다. 국방장관이 돌아가고 우리도 조금 뒤 각자 원위치에서 상황 대기하도록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스스로 책임총리였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잠시 회상에 잠겼다. 그러곤 “대통령과 나름 신뢰 관계가 있었고 다양한 부처 간 이견, 중요한 국가 정책에 관해 상당 부분 내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했다는 점에선 단순한 의전·대독 총리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또 장관 임명 제청권, 해임건의권을 행사했는지에 대해 “임명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누구다’ 짚어 말한 적은 솔직히 없지만 대통령이 어떤 장관에 대해 ‘물러나게 하는 게 온당한가’라고 상의하시길래 사표를 수리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김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의견이 충돌할 정도의 일은 없었다”면서도 “사소한 정책들에서 나와 생각이 다르신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은 적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정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입을 다물었다. 김 총리는 “대통령과 1대1로 식사를 하거나 술을 하는, 사적인 만남은 없었다”며 “조금은 드라이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대통령께서 나의 원칙과 상식, 지금까지 살아온 행태를 존중하고 잡음이 날 수 있는 이야기는 원칙적으로 안 하셨다”고 했다.

향후 책임 총리제를 확립하기 위해선 개헌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도 털어놨다. “대통령 리더십하에서 운영의 묘를 살려서 하는 방법도 있고, 그건 불안정한 것이니 필요한 제도의 틀을 만들어서 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또 “세계 각국을 다녀보면 대통령과 총리 있는 곳에서는 나름대로 역할 분담이 돼 있는데 우리도 제도의 틀로써 그런 것을 한번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총리는 ‘박근혜 당선인이 총리직을 제안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산뜻한 출발을 위해서는 (내가)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언론에) 말했는데 (박 당선인의) 제안이 온 뒤에 물리치면 인간적으로 미안하니까 그래서 미리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총리 재직 중 생각했던 롤 모델에 대해 전후 경제를 일으킨 콘라트 아데나워, 동방정책을 펼친 빌리 브란트, 동·서독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같은 독일의 지도자들을 거명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총리들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다만 느낌으로 얘기한다면 고건 전 총리가 다양한 행정 경험을 토대로 품격 있게 총리직을 수행하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총리는 ‘장수 총리’의 기록을 세운 데 대해 “영광스럽고 보람된 기간이었지만 너무 무거운 짐과 책임감 속에서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고 살아왔다는 점에서 참 힘든 시기였다”고 답했다. 퇴임 후 계획에 대해선 “당분간 좀 쉬면서 여유 있게 지내고 고향(장성)에도 가볼 생각”이라며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의 삶, 행복, 바람직한 사회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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