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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지문만 남긴 미제 사건, 3년간 138건 해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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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을 입력하고 저장·검색할 수 있는 지문자동식별시스템(AFIS). 10분 내에 지문으로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 국내 AFIS에는 4600만여 명의 지문 정보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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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어느 날 저녁 서울 공릉동 A씨(26·여)의 집 앞. 갑자기 한 남자가 귀가하던 A씨에게 달려들었다. A씨를 협박해 집 안까지 끌고 들어간 남자는 성폭행한 뒤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당시 범인이 현장에 남긴 건 손톱 크기도 안 되는 조각지문(일부만 남은 지문) 3개. A씨를 묶기 위해 콘센트에서 뽑았던 전선에 남은 지문이었다. 경찰은 범인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했고 사건은 그렇게 미제로 남게 됐다. 그로부터 7년 뒤인 지난해 중반, 전과 8범 구모(33)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성능이 향상된 지문자동식별시스템(AFIS)이 당시 밝혀내지 못했던 조각지문 3개의 주인공을 밝혀낸 것이다. 범인임이 확인된 구씨는 결국 구속됐다.

조각지문만 남겨 사건을 미궁에 빠뜨렸던 범인들이 속속 붙잡히고 있다. 지문 감식 기술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향상된 지문 감식 시스템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살인 5건을 포함해 총 138건의 미제 사건을 해결했다.

지문 감식은 일제 조선총독부가 1911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하지만 초기엔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채취한 지문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문 감식 수사가 날개를 단 건 AFIS를 도입한 1990년 이후다. AFIS는 지문을 입력·저장·검색하는 시스템으로 10분 안에 범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AFIS 도입 후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1985년 6건에 불과했던 지문 신원 확인이 지난해에는 4200여 건으로 늘었다. 여기에 경찰청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AFIS에 지문을 재입력해 선명도를 높이고 검색 시스템을 개선했다. 이를 통해 지문에 나타나는 특징점들을 선으로 연결한 부분의 면적, 융선(지문의 선)의 각도, 위치·방향 등을 활용해 지문 검색의 정확도를 높였다. AFIS에는 외국인, 국내 성인 등 4600만 명(일부 범죄자 중복 입력)의 지문 정보가 입력돼 있다.

지문 채취 기술도 향상됐다. 1948년 경찰부 감식과로 시작해 경찰청 내 감식계, 감식과로 이어져오던 것이 1999년 과학수사과로 확대 개편되면서 체계적으로 연구됐다. 기존에는 채취 도구가 흑연과 같은 분말과 백색 광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체에 무해하고 흡착력이 높아 거친 표면에서도 지문을 채취할 수 있는 압축분말이 보편화됐다. 검체(지문이 묻은 물건)에 따라 다양한 파장의 빛을 활용하도록 광원도 다양화됐다. 현재는 미라처럼 건조된 시신과 물에 불은 익사자의 지문도 채취가 가능할 정도로 향상됐다.

경찰은 올해 초부터 손가락 지문뿐 아니라 손바닥 지문인 장문(掌紋)도 수사 단계에서 확보해 활용 중이다. 손금을 기준으로 손바닥 어느 부위의 지문인지 확인해 그 부분을 용의자의 지문과 비교해보는 것이다. 국제법과학감정연구소 이희일 소장은 “지문 데이터베이스가 확보돼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지문 감식 기술은 세계 최고”라며 “DNA 분석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지문 감식은 과학수사의 시작과 끝”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장철환 감정관은 “현재는 보조적인 역할이지만 앞으로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예산·인력 보충이 필요하고 관련연구 또한 계속 돼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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