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사진작가 강운구씨의 뷰먼트 뉴홀 '사진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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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본 첫 눈에 반했으면서도 정작 사진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하던 1960, 7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그래도 '사진의 정신'에 대한 책이 좀 있다.

그 땐 책방에 가봐야 '사진의 기술'에 대한 조잡한 수준의 책이 한 두 종 있을 뿐이었다. 헌 책방을 뒤져,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사진잡지들을 구해 더듬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렵게 구한 사진역사 책인 뷰먼트 뉴홀의 『사진역사』(지금은 열화당에서 낸 번역본이 있다) 와 피터 폴락의 『사진으로 보는 사진역사』, 그리고 『게른샤임과 에데르』를 읽고 거대한 윤곽을 떠올리며, 사진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폴락의 책에선가 앙리 카르티에-브르송의 저 위대한 『결정적인 순간』이란 작품집에 관해 언급한 부분에서 작가가 그 책에 쓴 에세이를 인용한 것을 읽었다. 그 몇 줄은 선명하게 뇌리에 꽂혔다.

그 책은 50년대 초에 간행된 뒤 절판되었으며, 미국의 경매에서 높은 값으로 거래되던 수집가들의 선호 품목이었다. 변방에서 얼떨떨해하고 초췌하던 한 청년으로서는 감히 그런 책을 바랄 처지도 못되었다.

다만 『결정적인 순간』이란 사진 미학서에 포함된 그 에세이의 전문을 구해보려고 목말라했다. 궁하면 통한다던가. 그 무렵 우연히 그 책을 움켜쥐게 되었다. 조목조목 짚었으되 간결한, 사진을 사진으로서 인식한 작가의 확신에 찬 글과 그것을 실천한 사진작품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뒤 차츰차츰 알고 보니 당시엔 외국에도 '사진의 정신'에 관한 책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깨달음은 사진 안에서만이 아니라 사진 밖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일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한 여러 책들, 마거릿 미드와 켄 해이만의 『가족』, 레비 스트로스의 『문화의 유형』과 『슬픈 열대』, 이춘녕의 『쌀과 문화』(서울대 출판부) , 융의 『사람과 상??까치) ,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범우사) , 신경림의 『농무』(창작과비평) , 황지우의 『게 눈 속의 연꽃』(문지) , 그리고 며칠 전에 읽은 안규철의 『그 남자의 가방』(현대문학) ….

여전히 잡식하며 더듬어 나갈 수밖에 없다. 사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기록성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그것을 깊이있게 하려는 이들의 모든 책이 나에겐 사진을 위한 교과서다.

강운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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