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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입으면 일 못할 거라는 그 오래된 편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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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쉴 때는 언제나 치마를 입는다. 바지 차림의 휴식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집에선 늘 치마 차림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문을 나설 때는 언제나 전투복을 갖춰 입듯 바지를 차려입는다. 신문사에 들어온 후 줄곧 그랬다.

 그러다 2년 전, 상을 하나 받게 됐는데 신문에 나는 바람에 대략 주변에 알려지게 됐다. 한 선배가 기사를 보았다며 내게 나오라고 했다. 선배는 치마 정장 몇 벌을 골라 놓고는 이것저것 입어 보라고 했다. 그러곤 그중 한 벌을 골라 그걸 입고 상 받으러 가라는 거다. 기사를 보는 순간, ‘얘는 시상식에 뭘 입고 가려나 걱정이 되더라’고 했다.

 그때 나는 오히려 툴툴거렸다. “뜬금없이 무슨 치마를 입느냐”며. 선배는 불평을 못 들은 척했다. 그러곤 물었다. “신발은 있어?” 바지만 입는 내가 치마 정장에 신을 신발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선배가 “젊은 기분으로 샀다가 못 신고 나가는 신발이 있다”며 앞코와 뒷굽이 뾰족한 구두를 찾아줬다. 옷에 신발까지 신겨 보고, 안엔 무엇을 받쳐 입고 스타킹은 뭘 신으라고 일일이 코치하더니 이 감상적인 선배는 울컥하며 말했다. “이렇게 좀 입고 살아.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어떻게 치마도 못 입는….”

 내 학교 친구와 선후배들은 모두 여자라서 그들은 바지만 입고 다니는 나를 보면 ‘선머슴같이 살면 행복하지 않다’며 잔소리를 하곤 했다. 선배도 똑같은 잔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날 문득 생각했었다. 여성에게 치마는 단지 옷이 아니라 여성성 혹은 여성 간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코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지난주 국가인권위원회가 아시아나 여승무원에게 치마만 입도록 한 건 성차별이라며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성별로 일과 행위를 규제하는 건 차별이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 한 지인에게서 “오히려 여승무원들이 치마만 입는 거 알고 입사했고, 유니폼이 원래 규정된 걸 입는 것인데 무슨 인권위까지 나서느냐고 불평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여승무원들을 취재해 보았다. 17년 차라는 한 여승무원이 말했다. “치마 입으면 일을 못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더 성차별적이지 않아요?”

 맞다. 그건 분명 편견이다. 한데 나도 20여 년 전 직장 일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치마를 내던져 버렸다. 치마는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편견에 빠져 있었다. 요즘은 이따금씩 치마를 입고 출근한다. 치마를 입으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알게 된 건 치마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직은 내 ‘치마 인프라’가 빈약하지만 이젠 치마를 ‘복권’시키고 싶다. 치마는 죄가 없다. 여전히 치마 입은 여성이 하는 일을 불안하게 보거나 치마에 대한 ‘불온한 상상’이 난무함에도….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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