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가 된 여대생, 선화역의 '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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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남는 생명력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서양미술사'책을 얌전히 들고 다니는 청순한 여대생에서 하루 아침에 창녀촌의 창녀가 되기까지. 서원(20)은 영화 '나쁜 남자' (김기덕 감독)에서 극단을 오간다.


우연히 나쁜 남자 '한기'(조재현)의 눈에 띄어 길거리에서 강제로 키스를 당한뒤 창녀촌으로 팔려가는 여대생 '선화'가 그녀가 맡은 배역. 기껏 지켜왔던 '순결'은 창녀촌을 들락거리는 뭇 사내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자기가 처한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 절규해보지만 상처만 커진다.

증오와 복수심에서 차츰 이해와 연민,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한기에 대한 선화의 감정도 일반인들은 선뜻 따라가기 힘들다. 신인에게 결코 쉽지 않은 배역이다.

"노출 연기보다 사실 감정 연기가 훨씬 힘들었어요. 살아오면서 겪은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지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조재현씨 앞에 서면 저절로 `전율'이 온다는 점이에요. 카리스마라고나 할까. 기운 같은 게 느껴져서." 이제 두 번 째 영화 출연이지만 서원은 김기덕 감독과 인연이 깊다.

조재현이 '포주'로 나왔던 '섬'에서 '`다방 아가씨'로 잠깐 출연했고, '파란대문'에서 이혜은이 맡았던 역이 탐나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실제상황'에서도 캐스팅 제의를 받았지만 '내게 맞지 않은 역'이라 정중히 사양했다.

"서원 이외에 다른 여배우에게 이번 작품의 시나리오를 보여 준 적이 없다. '섬'에서 그녀의 가능성을 봤다. 시나리오에는 여자들이라면 치를 떨 만큼 여주인공이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지는 장면이 많다. 중견이든 신인이든 선뜻 역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마 없었을 거다. 그러나 서원은 정말 자신이 그런 상황에 내몰린 듯 처절한 슬픔을 연기했다. 나는 여태까지 한국 영화에서 그런 연기를 보지 못했다." 김기덕 감독의 극찬이다.

실제로 서원은 여린 외모 뒤에 강한 에너지를 지녔다. 백지장 같아서 언제라도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배우로서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창녀'가 되기위해 `용산' 역전에 다녀왔고, 감정을 잡기위해 촬영기간 내내 말을 아꼈다고 했다.

"혼신을 다했지만 아쉬운 점도 많아요. 초반에 대학생인 선화의 발랄한 모습이좀 더 많이 비쳐졌더라면 창녀촌으로 팔려가는 선화의 인생이 좀 더 극적으로 다가오지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신인답게 포부도 당차다. "`나한테 맞는 역'이라는 생각이 들면 앞으로 영화든,TV, 연극이든 간에 가리지않고 맡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배우가 평생 내 길이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연기를 하면서 나를 알아가고, 발견해 가지만 더 강하게 끌리는게 있다면 그때는 그 길을 갈 것 같아요."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라며 활짝 웃는 서원은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현재 뮤지컬 아카데미에 다니며 연기 실력을 쌓는 중이다. (서울=연합) 조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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