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한익환옹 16년만에 국내 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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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혼을 실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소? 한잎 잎새와도 같은 도공의 꿈이 그것이지.지금 돌아보니 내가 도자기에 혼을 넣은 것이 아니라 흙의 혼이 내게 들어온 것이었소."

조선 백자의 비밀을 되살려내는 분야에서 단연 독보적으로 꼽히는 도예가 석정 한익환(81) 옹.

그의 초대전이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통산 12번째, 국내에선 1985년 신세계 미술관 이래 16년 만의 개인전이다.

"몇년 전부터 전시를 하자고 조르길래 한차례 정리하는 기분으로 작품을 냈어요. 지난해 것도 몇점 있지만 대부분은 올해의 신작이지."

출품작은'입구의 각이 은행알처럼 예리하게 깎였고 몸체가 달처럼 둥글며 눈이나 우유 빛깔을 한' 백자 달항아리 위주의 20여점.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계산을 초월한 신기하고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을 지닌 18세기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해낸 걸작들이다.

그 재현의 배경에는 유약과 태토(흙) 를 집요하게 실험.연구해온 도자 인생 50여년이 녹아있다. 함북 청진 출생으로 연길 공업학교 광산과를 졸업한 그는 해방 후 문교부 도자기 기술원 양성소.상공부 고등기술원 양성소 요업과를 모두 1기로 수료하고 1950년부터 중앙공업시험연구소 요업과에 근무했다. 연구소 입문 7년째 되던 해에 이미 색상 연구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때 은사 한분에게서 "조선 백자를 재현해볼 수 없겠느냐. 자네라면 할 수 있다"는 격려를 받는다. 70년엔 경기도 용인 한백마을에 한국고미술자기연구소와 부설 익요(益窯) 를 짓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게 된 계기다. 위치는 자신이 사들인 양질의 백토광산 옆.

그때부터 서울의 가족과 떨어져 작업장에서 자취하면서 32년째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대지 3천평, 건물 2백평 규모의 작업장에서 핵심은 원료 배합실과 세개의 석유가마, 한개의 장작가마다.

"태토.유약의 배합비율과 온도에 따른 색깔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구워 보는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실험한 자료와 자기조각 20여만점을 보관 중이다.

그가 추구하는 백자의 미학은 "유약과 태토의 맛은 담백하면서도 고귀한 품격이 있어야 하고 자태의 멋은 좀 모자람이 풍기는 아름다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흙"이라고 한다. "전기가마.가스가마가 등장한 요즘에 불과의 씨름은 예전같은 것이 아니오. 이제 도자기는 흙과의 싸움이오. 흙을 사다놓고 쓰는 것은 작가가 아니오. 자기 흙을 찾지 못한다면, 자기 흙이 없다면 도예를 해서 뭐 하오□ 난 아직도 흙과 씨름하고 있지."

그는 소위 '현대도예'를 믿지 않는다. "전통을 제대로 알고 그 다음에 눈.코.입.사지를 붙이라는 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거꾸로 하고 있어. 현대에 전통을 붙이고 있다니까. 전통도 모르면서 갖다 붙이니 우스워지는거요. 내 뒤를 잇고 있는 자식들에게도 항상 해주고 있는 말이오."

그 자식들이란 3녀1남 중 둘째 딸과 아들이다. 둘째 딸은 국민대 도예과 출신으로 지난해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아들은 홍익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 도예과에 재학 중이다. 나머지 두 딸도 이화여대 미대 출신이다.

그는 10여년 전에 중풍으로 쓰러졌으나 7년간의 투병 끝에 다시 일어섰다. 그동안 백내장.녹내장 수술을 받으면서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도 작품도 할 수 있다. 이것이 마지막 전시는 결코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22일까지.

02-73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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