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많은 남매 애증 방정식 '유 캔 카운트 온 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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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희망이자 굴레다. 편안한 그늘이 되기도 하지만 얄미운 뙤약볕처럼 따가울 때도 있다. 가족에겐 그런 양자가 혼재한다.

'유 캔 카운트 온 미'는 아픔과 상처가 많은 남매가 엮어내는 미묘한 애정과 갈등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 속엔 흔히 쓰는 수법처럼 인간을 부풀리고 치장해 영웅 혹은 천사로 과장한 흔적은 없다. 내 곁에 있을 듯한 남매와 그들의 따스하고 우둔한 일상이 절절하게 담겨 있을 뿐. 비록 알고는 있었으나 절실하게 느끼지는 않았던 일상을 영화가 포착해 가슴 속으로 밀어넣어줄 때 느끼는 울림은 상상을 넘어선다.

올해 선댄스영화제 대상과 각본상,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뉴욕 비평가협회 각본상.여우주연상 등을 받은 이력이 말해주듯 평단이 인정한 수작이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대사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지만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비워놓고 있어 마음이 촉촉하고 포근해진다.

여덟살 아들 루디(로리 컬킨) 를 키우며 혼자 살아가는 은행원 새미(로나 리니) 는 여태껏 고향인 뉴욕 근처의 작은 마을 스코츠빌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동생 테리(마크 러팔로) 는 새미의 안정적인 생활과 달리 교도소를 드나들며 방황한다. 어릴적 부모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고아나 다름없이 자란 그들. 어느날, 몇달째 소식이 끊겼던 테리가 새미 앞에 불쑥 나타난다.

'유 캔…'는 숙명일 수 있는 가족의 유대로 얘기를 끌어가기보다는 각자 느끼는 객관적인 상황들을 나열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여간다.

여기에 남매간의 관계뿐 아니라 독신녀 새미가 상사인 지점장과 옛 애인 사이를 오가며 벌이는 혼란스러운 사랑, 아들 루디와 테리의 다툼과 화해가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솔직함과 유머, 톡톡 튀는 우디 앨런식 대사가 곳곳에 묻어나는데 이런 요소들은 영화에 상당한 활력소로 작용한다. 행여 '유 캔…'의 포장만 본 후 가족영화가 아닌가 여길 수도 있지만 소재만 그럴 뿐이다.

브로드웨이에서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케네스 로너겐의 데뷔작. 그는 갱영화에 코미디 요소를 도입한 독특한 스타일과 유머 넘치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던 '애널라이즈 디스'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명문 줄리아드와 브라운대를 거친 수재이자 '트루먼 쇼'에서 짐 캐리의 상대역으로 나와 강한 인상을 남긴 로라 리니는 이 영화에서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잘 잡아냈다. 테리 역의 마크 러팔로 역시 쓸쓸한 표정과 따뜻한 표정을 번갈아 지으며 호연한다.

잠시 한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서로에게 그늘 혹은 뙤약볕이 되기도 했던 테리와 새미. 누나가 동생에게 "이 집을 팔아 절반은 너에게 줄게"라는 대사를 건넬 때 영화는 막을 내린다. 테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야 하고, 새미는 그를 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아니 잡을 수도 없다.

하지만 배낭을 멘 동생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누이의 얼굴을 볼 때면 아마 관객들의 머리에는 참으로 많은 상념들이 스쳐 지나리라. 원제 You can count on me.

14일 개봉. 18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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