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자연과학 알아야 교양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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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도보다 한 수 높은 최상에 위치한다는 뜻이겠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자연과학이다. 한편 사람은 자연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당면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을 포함해서 우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과, 인간의 본질과 인간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루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통틀어 기초학문이라 한다.

대학에서는 기초학문의 기본을 교양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가르친다. 교양이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 온 총체적 지식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교양교육은 인문.사회.자연과학 전 분야를 균형 있게 다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위 문과.이과 간의 간격은 넓어서 특히 문과생이 과학을 폭넓게 공부하는 경우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40여년 전에 C P 스노 경은 비과학자가 열역학 제2법칙을 모르는 것은 과학자가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스노가 오늘날 살았더라면 열역학 제2법칙 대신에 빅뱅 우주론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모든 자발적 과정은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 우주의 진행 방향을 말해 준다면, 20세기 후반에 확립된 빅뱅 우주론은 우주의 근원 자체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스노가 열역학 법칙 대신에 빅뱅 우주론을 언급한다 하더라도 셰익스피어는 그대로 언급할 것 같다. 과학은 새로운 관찰이 이뤄지고 새로운 이론이 대두하면 자연에 관한 궁극적 진실을 찾아 끊임없이 변모하지만, 셰익스피어로 대변되는 인간사의 문제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도구가 발전하고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야가 새롭게 전개될수록 과학의 발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 역사에서 지난 1백년은 아주 특이한 시기다.

인류는 이미 수천년 동안 농업과 의술을 발전시키고, 시와 노래를 짓고, 법을 만들어 왔지만, 20세기에 들어서서야 은하 너머로 시야를 확장하고 우주의 기원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원자로 이뤄진 생명체인 인간이 원자의 실체를 파악하고 원자와 분자 수준에서 생명을 이해하게 된 것도 20세기의 업적이다. 그러다 보니 과학의 내용은 급속히 늘어나고 비과학도에게 접근하기 어려워져서 스노가 말하는 두 문화 사이의 단절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심화돼 왔다.

서울대의 교양과목 체제는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사회와 이념, 자연의 이해라는 네 영역으로 구분돼 있다. 대부분의 이과생은 문과의 세 영역에서 골고루 세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

그러나 문과생은 문과 영역에서 두 세 과목을 택하고 자연의 이해 영역에서는 한 과목만 택하면 된다. 아무래도 균형 있는 교양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과학기술이 중요한 21세기의 교양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문과생이 수강하는 자연과학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그러자면 과학의 핵심 내용을 쉽게 풀어서 재미있게 전달하는 교양과학과목 개발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희준 서울대 교수 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