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택 정책, 투기억제에서 거래 활성화로 전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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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짧았던 설 연휴기간 동안 각 가정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민생 현안은 아마도 장기화된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그로 인한 가계의 불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중에서도 주택거래의 위축은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목전에 둔 5060세대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최대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가계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의 거래 자체가 실종된 가운데 가격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아파트 거래량은 전년보다 21%나 줄었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실질주택가격 하락률이 3%를 훨씬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거래의 실종과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이른바 하우스푸어의 양산과 가계대출의 부실화가 촉발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와 거래 부진이 가계소비의 위축은 물론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또 오를 것이란 기대가 커지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부동산 경기의 부양책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과거 경험했던 부동산 투기 과열에 대한 염려와 함께 이미 우리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떠오른 가계대출의 부실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부동산 정책의 초점을 인위적으로 주택가격의 상승을 유도하기보다는 부동산 거래의 활성화에 맞춰야 한다고 본다. 그러자면 그동안 부동산 투기 및 과열 억제에 맞춰졌던 각종 규제와 세제를 주택거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방향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주택 취득세와 등록세 등 거래세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세수확보와 투기억제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 양도소득세도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특히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중과세는 주택수요 증대와 임대주택 공급의 확대를 위해 시급히 완화할 필요가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와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부동산 투기억제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획일적으로 적용할 게 아니라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리스크 관리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춰 금융기관별·대출자별·상품별로 차별화하고, 시장여건에 따라 신축적으로 재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제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은 과거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고 투기가 만연하던 시절과는 부동산 시장의 여건이 확연히 달라졌다. 인구의 고령화와 도시화의 정체로 주택수요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고, 저성장과 저금리 기조가 고착돼 가면서 주택금융의 수요도 달라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주택정책의 방향도 종전의 투기억제에서 주택수급의 안정과 주택금융의 리스크 관리로 바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