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외상장사에 멍드는 외국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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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바이어, "계약금조로 30%를 줄테니 물건 만들어 달라."

K사장, "이번 상담은 없었던 걸로 하자. 이것만으로도 나는 30%를 번 셈으로 치겠다."

칭다오의 한국 의류업체의 K사장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계약금 30%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처음에는 수주 자체가 고마웠다. 자기돈 30%를 보태 완제품을 만들어 적기에 납품했다. 공급자로서 할만큼 했으니 아무 클레임 없이 잔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안심했다.

그러나 웬걸, 바이어는 아무리 기다려도 돈 줄 생각을 안했다. 독촉하자 "팔리는 것 봐가며 주겠다"고만 했다. 몇차례 밀고당기다 잔금은 커녕 팔다남은 재고를 되돌려받고 말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납품하고도 못받은 외상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몇차례 소송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어 지금은 아예 법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이러다간 못 견디겠다고 판단한 K사장은 적게 팔더라도 현금장사를 하기로 작심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최대고민은 역시 판매대금의 회수다. 나름대로 제품에 자신이 있는 K사장은 현금장사를 고집할 수 있어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렇지 못하면 한없이 물려들어가기 십상인 곳이 중국이다.

한국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 상관행에 익숙치 않은 외국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양식으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큰소리 치는 것 자체가 '나는 중국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때문에 제품에 자신있는 기업들은 외상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다롄(大連)의 포항제철은 현금장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톈진(天津)의 신풍제약은 외상매출을 매달 총매출의 몇%식으로 상한선을 긋고 영업중이다. 팔려야 잔금을 주는 중국상인들도 물건만 좋으면 서로 가져가겠다며 선금을 낸다고 한다.

물건을 사주겠다는 바이어의 주문이 보약일 수도, 독약일 수도 있는 곳이 중국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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