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국비외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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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내무분과위원 8명은 세계각국의 지방자치제 실시현황을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3개 반으로 나누어 외유의 길을 떠난다. 이들이 사용하는 여비는 정부예산 중 지방자치제 연구비조로 계정된 금액 중 잔여액 5천만원중에서 할당하게 되리라고 한다. 제 6대 국회의원의 대다수가 각종명목으로 외유를 하는데 국비를 써왔다는 것은 세인이 공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번 내무위원들의 「케이스」는 국고금랑비의 표본으로서 납세자의 각별한 주의를 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지방자치제 실시를 기피하여 왔다. 그 구실인 즉 연구가 부족하다, 혹은 지자체를 실시할 수 있을 이만큼 반영돼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당의 「톱·클라스」급 간부가 지방자치제는 70년대에 들어서 국민경제가 윤택해진 연후에라야만 비로소 실시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 하여 정치적 논쟁마저 자아냈던 일이 있다.
이처럼 지자제실시에 성의가 모자라고 그 실시를 기피해온 정부 밑에서 국회내무위원이 지방자치제 실시 현황을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수천만원의 국고금을 써가면서 호화로운 외유의 길을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해괴망측한 일이다. 각국의 지방자치제도나 그 운영실태는 국내에서 문서를 갖고서도 충분히 비교 연구할 수 있는「테마」요, 또 만약에 반드시 실시현황을 시찰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이 방면의 전문가를 몇사람 외유시켜 그 보고를 들으면 되는 것이다. 사리가 이처럼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국회내무위원 8명으로 하여금 거액의 국가예산을 써가면서 외유를 시킨다는 것은 지자제 실시의 현황을 시찰하고 연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국회의원으로 있는 동안 국고금을 가지고 한번 호화롭게 외유나 해보자는 데 그 참다운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내무위원들이 지자제연구비를 자기네들의 여비로 지출시키게 하는데 어떤 흑심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렇지만 내무위원들을 국비로 외유를 시켜주는 대가로 국회내무위원회와 내무부사이에 어떤 불미한 담합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국민이 갖는다고 하여 이는 조금도 나무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국회는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심의 확정함으로써 정부활동의 기준을 밝혀주는 동시에 국정감사권을 발동하여 정부시책을 감시하고 편달할 위치에 서있다. 그리고 국회의 이러한 권한은 주로 분과위원회와 그 소관 행정부처사이에 관계에 있어서 행사된다. 우리는 국무위원회와 내무부가 서로를 분입하고 견제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수년을 두고 접촉을 하노라면 인간적으로 친밀해진다는 것은 시인하는데 주저치 않으며 또 그것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분과위가 그 소관행정부처를 달래거나 위로하거나 혹은 양자가 결탁하여 정부예산을 사실상 사용화 하게 되고 또 정부가 국회의원에게 예산의 사실상 사용화를 허용해줌으로써 자기가 지니고 있는 약점에 대한 공격을 무마시키고자하는 것을 삼권 분입제의 말할 수 없는 추락으로 규정짓지 않을 수 없다.
중대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정치부재, 국회부재의 상황을 노출시켜 행정부 권력의 「액세서리」적 존재로 타한 느낌이 있는 제6대 국회가 자기네들의 세비를 올리고 혹은 국비를 털어서 호화로운 외유를 하는데는 전원 일치로 열의를 보이는가. 우리는 국회의원들의 이기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서 국민이 바친 귀중한 세금이 많이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탄하면서 대체 누구를 위한 국회인가 국회의원 각자의 맹성를 촉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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