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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극 '수천' 23일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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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밤 북두칠성이 내려 앉으면/별의 대지를 향해 말을 내달리는 전사들/그들 앞에 길은 애초에 없으리니/그들 앞에 경계는 존재하지 않으리니//누가 위대한 대지 위에/경계를 그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대륙의 노래' 중에서)

별의 대지, 말달리는 전사들,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우리 선조인 고구려인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들은 드넓은 대륙을 품고자 앞으로 앞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그 패기와 열정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올해로 창단 10주년을 맞는 가극단 금강이 기념작으로 고구려의 웅대한 포부와 대륙의 신화를 담은 가극 '대륙의 여인, 수천(守天)'을 23일 무대에 올린다.

'수천'은 중원 고구려비에 새겨진 문자. 고구려가 하늘의 자손이며 다른 어떤 강력한 세력에 뒤처지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극에서는 이 땅을 지킨 여인 '수천'으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항상 장하독이 있었다. 장하독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견된 호위 무사의 별칭으로, 고구려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1천5백여년 전. 고구려 광개토대왕(호태왕)은 영토확장 과정에서 말과 소금을 얻을 수 있는 서요하의 다싱안링(大興安嶺)까지 진군한다. 장하독과 그의 부인 수천은 광개토대왕의 명에 따라 이 땅에 뿌리를 내린다. 이 때부터 두사람은 1천5백여년의 역사를 통해 부부.부녀.모자 등의 관계로 이 땅을 지켜나간다.

극은 일제시대에서 시작해 고구려.고려, 다시 일제시대.고려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장하독의 딸 수천은 몽골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장하독은 이 아이를 대륙의 아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독립군이 숨을 곳을 찾아 다싱안링에 들어오자 청년 장하독은 어머니 수천에게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러다 수천이 일본인에게 살해당하자 장하독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이 땅을 지키기로 맘먹는다.

연출가 김정환씨는 "지금도 다싱안링에는 고구려인의 후예가 살면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있다"며 "과거 잃어버린 우리 땅을 되찾자는 게 아니라 우리민족의 혼이 아직도 살아있음을 되새겨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륙의 여인, 수천'은 엄격하게 따지자면 뮤지컬과 가극의 중간 쯤이다. 활동적인 배우들의 춤사위는 가극보다 동적이고, 노래가사는 뮤지컬보다 시적이다. 때문에 금강은 이를 '시극(詩劇.Poetic Musical)'으로 명명했다. '전대협 진군가''서울에서 평양까지' 등 민중가요를 만든 윤민석씨가 작곡을 맡았다.

26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1만5천~3만원. 평일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7시, 일 오후 3시.6시. 02-501-4105.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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