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활동으로 시작해 전국 대회 2연패 ‘금자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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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야구라고 불리는 소프트볼에 푹 빠진 여고생들이 있다. 온양여고 소프트볼 동아리 소속 학생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식 운동부가 아닌 동아리 팀(특별활동)이기 때문에 지원도 환경도

열악하지만 전국스포츠 동아리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5일 그들의 연습현장을 찾았다.

조영민 기자

5일 오후 온양여고 소프트볼 동아리 학생들이 교정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퍽~!”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 미트(글러브)에 꽂힌다. 꽤 멀리서 던졌는데도 불구하고 제구가 좋고 스피드가 살아있다. “야! 손이 얼어서 공 받을 때마다 아파 살살 던져.” 포수가 소리치자 투수는 멋쩍은 듯 머리를 쓸어 올린다.

 이날 오후 1시. 점심을 먹고 모인 온양여고소프트볼 동아리 학생 7명이 간단한 연습을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투수와 포수가 실전투구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외야 수비수들이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공이 글러브를 벗어나도 질책 대신 웃음소리가 퍼질 정도로 분위기는 밝았다.

 “연습시간이 아주 많진 않아요. 하지만 연습마다 즐거운 분위기가 계속되니까 오히려 효율적인 것 같아요.” 팀의 에이스 투수인 김주애(고2)양의 얘기다. 김양이 소프트볼과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현재 포수를 맡으며 김양과 배터리를 이루고 있는 문재경(고2)양의 권유로 시작했단다.

 
글러브 끼고 방망이 든 여고생들

“소프트볼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에 관심이 없었어요. 재경이가 혼자 하면 심심하다고 같이 하자고 꼬셔서 시작했죠.”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긴 했지만 김양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팀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포지션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투수와 내·외야수를 모두 볼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였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단숨에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을 꿰찼다. 몇몇 소프트볼 전문가들은 그의 실력이 정식 소프트볼 선수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급이라고 칭찬한다.

 “비록 좋아서 시작한 소프트볼은 아니지만 지금은 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운동해서 실업 팀이나 대학 팀에 입단하는 게 목표에요.” 김양은 정식 소프트볼 선수가 되기 위해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반면 김양에게 소프트볼을 권유한 포수 문양은 취미로 소프트볼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학교 이 외에 아산에 소프트볼 동아리가 있는 학교는 신정중학교가 유일해요. 중학교에 입학해서 운동이나 할 겸 취미 삼아 가입했죠. 근데 훈련이 너무 힘들었어요. 친한 친구들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주애를 꼬신 거에요.”

 문양은 김양이 본격적으로 투수를 하면서공을 받아주다 자연스럽게 포수를 하게 됐다고 한다. 실력 또한 김양과 함께 나날이 발전해갔다. 지난해 12월에는 경기 하남에서 열린 전국 스포츠 동아리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내 대회 MVP까지 거머쥐었다.

 “소프트볼이 재미있긴 하지만 선수 쪽으로 진로를 가진 않으려고요. 더 이상 주애의 공을 받을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뒤에서 항상 응원할거고 계속 소프트볼에 관심을 가질 겁니다.”

 김양과 문양과는 달리 부족한 팀원을 채우기 위해 감독의 권유로 팀원이 된 이들도 있다. 김지선, 김지수양이다. 이들은 단순히 체격조건이 좋고 운동신경이 있어 소프트볼을 시작하게 됐다. 아직 실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알토란 같은 역할로 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노력으로 얻은 값진 결과 ‘전국대회 우승’

온양여고 소프트볼 동아리는 2011년과 2012년 전국 학교스포츠 소프트볼 대회에 출전해 2년 연속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2011년대회에서는 김주애양이 4경기 방어율 0점 대의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MVP를 거머쥐었으며 지난해 대회에서는 문재경양이 5할이 넘는 고타율을 자랑하며 MVP를 차지해 온양여고를 더욱 빛냈다. 나머지 팀원들도 평균 3할이 넘는 타율과 참가 팀 중 최소실책을 기록하는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이 팀이 처음부터 승승장구 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회직전까지도 팀원이 부족해 전전긍긍했다. 겨우 인원을 맞추긴 했지만 그마저도 후보 선수가 없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특히 전국대회는 6개 팀이 참가해 풀 리그 형태로 진행됐다. 한 번 이기면 올라가는 토너먼트제가 아닌 모든 참가 팀과의 경기를 통해 승점을 따지는 방식이라 힘든 일정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3년째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김건구 교사는 “전국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것은 아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식 운동부가 아니다 보니 연습시간이 없어 주말과 방과후에 연습을 하곤 했는데 모두 불만 없이 잘 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부터는 팀원을 더 모아 동아리가 아닌 정식 운동부로 승인 되도록 노력하겠다”라며 “실업팀이나 대학에도 소프트볼 팀이 생겨나 많은 아이들이 소프트볼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동아리부원은 2학년 6명과 1학년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팀원들을 제외하고 게임을 할 인원자체가 부족하다. 문양을 비롯한 팀원 중 대부분은 3학년이 되는 올해부터 소프트볼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한 상태다. 그래서 팀의 막내인 김보민(고1)양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전국대회에 나가고 연습시합을 하며 흥미를 가졌어요. 내년에 언니들이 다 빠지면 저도 ‘그만둬야 하나’하는 걱정이 있어요.” 막내 김양의 말에 팀원들은 “아니다. 보민이가 이제 팀의 주축으로서 팀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힘을 북돋아줬다. 그러자 김양은 “언니들 계속 할거지?”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스 김주애양과 막내 보민양을 필두로 하는 온양여고 소프트볼 동아리. 올해에 열릴 전국대회에서도 그들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소프트볼=야구와 거의 비슷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구기 경기로, 야구공보다 조금 큰 공을 사용하며 투구 폼 등에 제약이 있는 스포츠다.

실내 야구로 고안된 것으로서 1887년 시카고의 행콕(G. Hancock)이 개발했다. 그 후 각지로 퍼져 여러 명칭으로 불리다가 1929년부터 소프트볼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에 걸쳐 붐이 일어난 가운데 국제적으로 보급이 확산됐다. 특히 유럽에서는 야구보다 훨씬 유명하고 즐겨하는 스포츠다. WBC처럼 현재는 국제소프트볼연맹(ISF)이 주최하는 세계선수권대회가 4년마다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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