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쓸며 종손 마음 얻고 고택 촬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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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동에 있는 광산 김씨 예안파 종택에서 향사례 지내는 종손들. [사진=포토스퀘어]

‘종가(宗家)의 문을 열어젖힌 여자’ ‘종손(宗孫)이 인정한 여걸’. 사진작가 이동춘(52)씨를 부르는 별명은 그에겐 일종의 훈장이다. 소문난 고택을 찾아 밥솥에 청소도구 챙겨 전국을 떠돈 십여 년 세월이 그 별명 속에 담겨 있다. 안동·봉화·예천·성주·보은·경주·정읍·담양·해남의 보존 잘된 종가에서 건져 올린 수만 장 사진은 이제 문화재청도 찾아올 만큼 이 분야 기록물로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처음엔 어디 외간 여자가 종가 문턱을 넘느냐고 내다보지도 않았어요. 들고 간 빗자루로 먼저 한옥 안팎을 깨끗이 쓸었지요. 떡을 해서 돌렸어요. 궂은일에 팔 걷어붙이고 나섰고요. 말이 트이데요.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지요. 그제야 대문이 열렸어요. 봄꽃, 여름 하늘, 가을 단풍, 겨울 눈꽃이 핀 한옥을 무시로 촬영했어요. 한옥의 속살은 곧 선조의 삶이었어요.”

 12일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선비정신과 예(禮)를 간직한 집, 종가’는 이씨의 종가 사랑을 동유럽으로 퍼뜨리는 첫 전시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연 종가 사진전이 호평 받으며 초대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과 수교 20주년이 된 슬로바키아, 한국 문화의 불모지인 불가리아 등지에서 이씨 소매를 잡아끈다.

이동춘

 “한옥에 들어앉아 마음을 비우고 카메라 앵글 가득 자연을 채워 넣었지요. 한옥이 스스로를 열고, 비우고, 그 자리에 자연을, 문화를, 삶을 채워 넣은 것처럼요. K팝과 드라마를 앞세운 한류의 뒷심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2000년을 이어온 한옥, 그중에서도 종가는 건축미학을 바탕으로 선비문화와 예절을 담았기에 한류의 본향이라 할 수 있죠.”

 이씨는 특히 종가를 지키는 종손의 마음을 동유럽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분들의 일생을 한마디로 풀면 나눔과 베풂입니다. 이웃을 섬기고 나라를 걱정하며 살던 가문의 집에 들어서면 정갈하고 진솔한 기운이 흘러나와요. 한옥을 보존하려면 껍데기 말고 이런 정신과 마음가짐을 전승했으면 싶네요.”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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