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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방귀를 허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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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규연 기자

‘옛날 어떤 집에 새 며느리의 얼굴이 노랗게 되자 시아버지가 그 까닭을 물었다. 며느리가 방귀를 뀌지 못해 속병이 난 것이라고 하자 시아버지는 흔쾌히 방귀를 허(許)한다. 온 식구가 기둥을 붙들고 며느리에게 방귀를 뀌게 하니 집이 무너져 버린다. 할 수 없이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기로 하는데 가는 도중 시아버지가 높이 달린 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며느리가 방귀로 배를 따 대접한다. 시아버지는 다시 며느리를 귀하게 여긴다.’

 충북 진천을 여행할 때 들은 ‘방귀쟁이 며느리’ 소화(笑話)다. 쥐 죽은 듯 지내야 하는 원형이 절대적 지위를 가진 원형 앞에서 금기에 가까운 생리현상을 해소하는 스토리에 세월을 건너뛰는 카타르시스가 숨쉰다. 마음의 답답함을 떳떳이 배설할 수 있게 권력자가 아량을 베풀어달라는 서민의 소망도 담겨 있다.

 여기 마음의 화(火)를 내려놓지 못해 진짜 불을 놓아버린 황(45)씨가 있다. 버스 38대를 연기로 날려보낸 ‘외발산동 방화범’이다. 요 며칠간 사회면에 비중 있게 처리된 기사에서 그는 위험하고 지능적인 범죄자였다. 자업자득임에 틀림없지만 사내의 내면을 들여다볼 만한 구석은 있었다. ‘무사고 경력자로 특별히 모난 성격이 아니었음’. 불과 얼마 전까지 이런 평을 듣던 평범한 가장이 희대의 방화범이 된 사연이 궁금했다.

 운명을 바꿔버린 지난해 6월의 어느 날, 사내는 버스를 몰고 서울 개봉사거리를 천천히 통과 중이었다. 한 노인이 버스전용차로로 뛰어드는 걸 보고 급제동하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다. 회사는 승객 안전을 이유로 즉시 그를 해고한다. “사고가 불가항력적이었다”는 경찰 조사 결과를 근거로 복직을 요구하지만 회사는 단호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고, 한 정당 사이트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글도 올렸다. 서울노동위는 사내의 손을 들어준다. 사고전력이 없고 피하기 쉽지 않은 사고였음을 감안해 해고가 부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지만 회사는 다시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또 항의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어느 날, 회사에 숨어들어 버스 두 대에 불을 지른다. 마침 바람이 불어 버스와 버스 사이로 불길이 번져나갔다. 경찰의 끈질긴 추적 수사에 붙잡힌 사내는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고 후회했지만(강서경찰서 이건화 과장의 증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황씨 같은 방화범은 최근 10년 새 50%나 늘었다. 하루에 6건이 일어난다. 이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이 분노 관리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최근 5년 새 분노조절장애 환자가 두 배가 됐다는 정부 수치도 있다. 홧김 방화는 극단적인 경우일 뿐, 멀쩡한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욱하며 화를 낸다. 스트레스가 감정을 관장하는 뇌를 압박해 자제력을 잃게 한 결과다.

 음식을 빨리 먹으면 위에 공기가 많이 들어가 방귀가 많아진다. 외부 공기와 음식 발효가스의 합체물이 방귀이기 때문이다. 라이프 사이클이 빠른 한국에서 방귀와 함께 스트레스가 많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이를 받아들이고 조절하는 방법을 사회·개인이 찾아내야 한다. 며느리의 방귀를 시아버지가 허락하듯, 불편함을 참아주고 답답함을 들어주는 배려의 안전망을 국가·단체·기업 차원에서 짜야 한다.

 꼭 5년 전 숭례문이 불에 탔다. 10년 전 이맘때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벌어졌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며칠 전 방화를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게 의결했다. 무차별 범죄에 단호히 대응하는 것은 옳지만 형벌만 높인다고 능사는 아니다. 방화 재범률이 60%에 가까운데도 방화범을 치료하고 잠재위험군을 관리하는 기제는 거의 없다. 우선 이런 구멍을 시급히 메워야 한다. 더 크게 보면 우리는 가끔씩 시원하게 방귀를 뀌어야 하고, 남이 뀌는 방귀도 눈감아줘야 한다. 마음의 화(火)가 아직 아기일 때 잘 보살펴 분노의 불길로 크는 걸 막아야 한다. 연쇄 방화광은 몰라도 버스기사 황씨 같은 분노 방화범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