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출신 연예인 김혜영 화려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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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녀에게서 '귀순'이란 꼬리표를 떼어 버리자.

북한 출신 연예인 김혜영(27) .'귀순 여배우'의 딱지를 떼고 '만능 엔터테이너'를 향한 그녀의 화려한 날갯짓이 시작됐다.

현재 KBS 2TV의 인기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에서 개그우먼으로 끼를 맘껏 발산하고 있는 그녀가 내년 3월엔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또 내년 봄 방영 예정인 한 TV 시대극의 출연 요청을 받아 놓은 상태이며, 세미 트로트를 위주로 한 독집 앨범도 곧 선보인다.

"호기심과 동정심에서 출발한 팬들의 사랑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차피 남한의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재능으로 승부를 걸어보고 싶어요."

북한에서 온 여배우라는 타이틀이 처음엔 일종의 훈장이었지만, 이젠 그녀를 울타리 안에 가두는 짐으로 작용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김혜영. 그는 "남한의 연예인으로 튀고 싶다"고 선언하고 방송.영화.가요계를 숨가쁘게 넘나들고 있다.

한창 촬영 중인 영화 '반란'(연출 조성구) 에서 그녀는 터프하고 강인한 형사 반장 역을 맡았다.

평양연극영화대학에 다니던 시절 '여의사''참된 주인들' 등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모두 순수하고 애절한 여주인공역이었다고 한다.

강인한 여성 역은 처음이고 자신의 실제 성격과도 맞지 않지만, 이미지 쇄신을 위해 과감히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한편으로 그녀가 공을 들이고 있는 또다른 일은 음반 제작 작업이다. 이런 그녀를 확실하게 밀어주고 있는 조력자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 집에 들어가면 그녀는 어머니에게 붙들려 노래 연습을 해야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가수로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라며 노래방 기기까지 구입해 딸을 독려하고 있다.

"북에 있을 때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씨와 라이벌이었어요. 유치원 시절 전국 노래대회에서 공동 1위를 차지했었는데, 출신 성분 때문에 제가 밀렸어요. 하도 억울해 그 이후로는 노래를 포기했었죠. 이제 인생이 바뀐 만큼 잊혀졌던 꿈을 다시 펴고 싶어요."

자신감에 넘쳐 있는 그녀에게 한 가지 난제는 춤이다.

북에서는 엉덩이를 흔드는 춤, 특히 디스코류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아직 빠른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고의 연예인이 되겠다며 승부수를 던진 김혜영. 볼펜을 입에 물고 입이 퉁퉁 붓도록 서울말 연습을 했다는 그녀는 이제 거의 완벽하게 서울 말씨를 구사한다.

얼마 전에는 머리도 노랗게 물들였다. 1998년 귀순 당시에는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나 싶었던 압구정동의 젊은이 문화에도 익숙해졌다.

"물론 아직도 이상한 건 많아요. 특히 왜 그렇게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제가 그런 분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귀순 배우'란 굴레를 벗고 당당히 새 지평을 여는 그녀의 비상.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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