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퇴출위기 에번스 화려한 '報恩 플레이'

중앙일보

입력

"으이구, 저걸 그냥."

프로농구 LG 세이커스의 김태환 감독은 1라운드에서 6연패의 수렁을 헤매며 하위권을 전전할 무렵 말릭 에번스와 얼굴만 마주치면 눈살을 찌푸렸다. 골밑에서 맥없는 플레이만 일삼자 텁수룩한 수염에 방금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얼굴마저 보기 싫었다.

이 무렵 세이커스의 플레이는 형편없었다.

지난달 11일부터 두 주일간 6연패, 경기 내용도 지난 시즌 정규리그·플레이오프 준우승팀답지 못했다. 팀의 자랑인 스피드는 사라졌고 조성원의 장거리포는 번번이 불발했다.

사실 에번스가 부진의 원인은 아니었다. 신인 송영진(1m98㎝)의 가세로 높이를 얻은 대신 스피드가 떨어진 세이커스는 새로운 팀 컬러를 정착시키는 중이었다. 김감독은 원인을 잘 알면서도 에번스가 못마땅했다.

"조니 맥도웰(SK 빅스)처럼 골밑을 펑펑 뚫어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에번스는 6연패 하는 동안 경기당 15득점·9.2리바운드의 무난한 성적을 올렸지만 김감독의 기대에는 못미쳤다. 당연히 퇴출 문제가 불거졌다.

구단에서는 "감독이 원하면 바꾼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김감독은 "당분간 그냥 간다"고 결정했다. 조성원을 비롯한 외곽요원들이 부진해 골밑 수비를 끌어내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TV 드라마 속의 견훤처럼 "으이구"를 연발하던 김감독은 2라운드 중반부터 얼굴이 펴졌다.

지난주 4연승하며 안정을 찾은 세이커스는 지난 5일 모비스 오토몬스를 누르고 8승7패로 마침내 4강권에 진입했다.

조성원의 슛이 살아나자 조우현·구병두도 승부처에서 불을 뿜었다. 그러자 에번스도 강한 리바운드와 높은 공격 성공률로 상승세를 부추겼다. 에번스는 오토몬스전에서 24득점·1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모두 팀내 최다 기록이었다.

이제 문제가 달라졌다. 김감독이 경기 도중 에번스를 질책하는 장면이 줄었다.'모범생' 에릭 이버츠가 더 자주 지적을 받는다. 최소한 퇴출 위기는 모면한 것으로 보인다. 에번스 자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절친한 동료 선수가 구단의 퇴출 움직임을 귀띔했을 때 에번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는 내 할일만 한다"고 했다. 요즘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목욕탕에서 김감독을 만나면 쓰윽 웃는다. 가끔은 어깨동무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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