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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마이크론 협상내용과 전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하이닉스반도체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간 전략적 제휴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양사가 전략적 제휴추진을 공동선언한 지 하루만인 4일 마이크론 협상팀이 한국에 들어와 5일 오후부터 공식협상이 개시되는 등 빠른 진행속도를 보이고 있다. `한달내'라는 시한을 못박기는 했지만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다.

이런 추세대로 라면 1∼2주 안으로 윤곽이 드러나는게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마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협상은 세계 반도체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의 `빅딜'인데다 양사는 물론 채권단, 국내외 주주, 종업원 등 관계그룹간의 이해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사안이어서 `정해진 시간내' 결론을 지을 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 `밑그림'은 이미 잡힌 듯 = 협상 진척속도로 볼 때 이미 큰 틀의 제휴방식에는 `합의'를 봤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미 지난 9월 박종섭 사장이 미국 새너제이를 방문했을 당시 마이크론 최고경영진과 만나 `총론'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후 빌 스토버 부사장이 지난달말 방한했을 때 정부.채권단 고위관계자와의 비밀접촉에서 구체화하는 수순을 밟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마이크론이 비슷한 시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라는 강수(强手)를 접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 소식통도 "최고경영진간 이미 높은 수준(High Level)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주목되는 것은 그간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성향으로 유명한 마이크론이 몹시 서두르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는 점. 특히 이번 협상이 동등한 자격과 조건으로 추진하는 일반적 전략적 제휴협상이라기 보다는 `하이닉스가 매물을 내놓고 마이크론이 원매자가 되는' 식의 매각협상 처럼 진행되고 있는 점도 의아스럽다는 시각이다.

이에따라 하이닉스 또는 채권단이 이미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 마이크론을 서둘게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 주변에서는 연내 부실기업 처리를 매듭짓는다는 정부의 정책적 목표와 연결짓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일부 외신들은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죽이기' 전략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파트너인 마이크론이 협상에 적극적인 데는 하이닉스의 생산설비를 인수한 뒤 폐쇄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 자본제휴 쪽에 무게중심 =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밑그림'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지분맞교환 등 자본제휴쪽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감산제휴 등 공동마케팅과 기술개발도 거론되고 있지만 채권단 내부기류로 볼 때 `본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합병은 정서적 거부감이 큰데다 감자 수반이 불가피하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등의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따라 지분맞교환 또는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일정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와관련, 구조조정특위 고위관계자는 "감산 또는 기술제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내용을 갖춘 실질적 제휴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관계자는 "양사가 서로 경영파트너로서 함께 손을 잡고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분을 서로 주고받는 방식의 자본제휴를 기반으로 장기적으로 감산 등 공동마케팅과 기술개발을 꾀하는 포괄적 제휴의 `모양새'를 갖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이닉스로서는 경영 안정성을 높이고 마이크론으로서는 적은 부담으로 소기의 성과를거둘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 마이크론측으로서는 적은 지분으로 하이닉스의 대주주로서 경영에 간여함으로써 D램업계 1위인 삼성전자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마이크론측은 경영권을 인수하는 수준의 대량지분을 인수할 경우 연결재무구조 악화로 주주들의 반발을 살 수 있어 경영권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수준의 일정 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론측은 지난 90년대 중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를 인수했을 때도 일정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출자전환후 채권단 지분을 맞교환할지, 아니면 마이크론이 내년초 유상증자때 지분참여할 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다만 출자전환후 채권단 지분 맞교환은 시일이 오래 걸리는데다 하이닉스 자체의 유동성에는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여 후자방식이 유력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신규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유상증자 참여가 여러모로 유리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마이크론이 대우자동차 매각방식처럼 하이닉스의 핵심설비만을 자산부채양도방식(P&A)으로 인수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하이닉스 및 채권단과의 입장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 이달내 윤곽 잡을 듯 = 협상진행 추이로 볼 때 하이닉스측이 공언한대로 `제휴를 추진하느냐, 마느냐(Go or No-go)'의 여부가 이달내로 가닥을 잡을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5일부터 시작된 1차 협상은 일단 기본방향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것으로 시작하겠지만 협상막바지에는 각기 선호하는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인다.

1차협상이 2주 이내 마무리되면 마이크론 협상팀이 미국 본사로 돌아가 검토작업을 진행하고 하이닉스측도 구조조정특위와 채권단간 논의를 거쳐 최종 협상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본제휴시 주당가치산정 등 가격문제가 걸려있어 심도있는 검토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양사 모두 한달내 협상매듭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이달말 2차협상을 벌여 제휴방식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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