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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철, 그리고 동남권 신공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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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갑생
JTBC 사회1부장

2006년 11월 말 목포.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유지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해찬 전 총리가 곧이곧대로인 사람이라 호남고속철은 타당성이 없다고 말해 난리가 났었다. 그래서 (내가) 정치적 관점에서 판단했다.”

 발언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200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광주 지역인사들을 만난 이해찬 총리는 호남고속철도 사업을 서둘러 착수해 달라는 건의를 받았다. 으레 “잘 검토해보겠다”는 정치적 응대를 예상했지만 답은 의외였다. 이 총리는 “경부고속철도가 막대한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호남고속철도를 서둘러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호남지역의 반발은 거셌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직접 호남 달래기에 나섰다. 그해 11월 전남도 신청사 개청식에 보낸 축하 메시지에서 “호남고속철도 건설은 인구나 경제성 같은 기존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전이 있는지,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인지를 갖고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달 뒤 호남고속철도 타당성 검증을 맡았던 국토연구원이 결과를 발표했다. 비용 대비 편익을 따지는 경제성(B/C)이 0.31이었다. 사업추진 적정선인 1.0에 한참 못 미쳤다. 평소라면 사업추진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 8월 호남고속철도 건설 기본계획은 확정됐다.

 물론 논란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줄곧 ‘경제성’이 아닌 ‘정치적 고려’로 결정할 것임을 밝혀온 터라 더 따지기도 어려웠다. 호남고속철에 대한 책임을 노 대통령이 스스로 다 떠안았기 때문이다.

 지난 얘기를 새삼 꺼낸 건 동남권 신공항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사실상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금 부산과 경북 지역에선 서로 공항을 유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왜 신공항 건설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설명한 적이 없다. 대선 전인 지난해 11월 “대통령이 되면 국제적인 항공전문가들을 통해 누구나 수긍할 국제적 기준에 맞춰 공정하게 (입지를) 정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2011년 3월 말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가 발표한 평가 결과에 따르면 가덕도는 경제성이 0.70, 밀양은 0.73이었다. 결론은 ‘타당성이 없다’였다. 불과 2년이 흐른 지금 다시 평가한다 해도 경제성이 딱히 올라갈 변수는 없어 보인다. 경기 침체로 오히려 더 낮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박 당선인에게 요구하고 싶다. 정부나 연구기관을 통해 억지로 경제성을 끼워 맞추지는 말라고. 대신 정치적 고려로, 표 계산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솔직히 밝히라고. 그리고 결과는 역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지겠노라 선언하라고. 정치적 목적으로 밀어붙인 초대형 국책사업 탓에 애꿎은 공무원과 전문가들만 도마에 오르는 촌극은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권력은 책임이다.

강 갑 생 JTBC 사회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