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동흡 "딸들이 출근길에 상해 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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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5일 경기도 분당에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재임 6년간 받은 특정 업무경비 전액(약 3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의 언론 인터뷰는 지난달 청문회 이후 처음이다. [김경빈 기자]

이동흡(62)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사청문회를 경험하니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면 이런 식으로 심판하나 싶었다”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를 계기로 ‘괴물 이동흡’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사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헌재 소장 자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면 안 된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주요 문답.

 -38년간 재판관 자리를 지키다 이번에 사실상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번 청문회 원칙은 무죄추정이 아니라 유죄단정이었다. 혐의를 덮어씌우고 단시간에 당사자에게 해명하라고 압박하면 억울한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고 절감했다. 특히 사실과 다르게 ‘항공권 깡’(높은 등급의 항공권 좌석을 예약한 뒤 싼 좌석으로 바꿈)을 했다고 묻지마 식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을 당했을 때 가장 억울했다. (항공권을 바꾼 건) 돈을 챙긴 게 아니라 헌재 예산을 절감한 것이었다.”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쓴 건 사실 아닌가.

 “2010년 김황식 국무총리 청문회 속기록을 보면 그때도 특정업무경비가 거론되자 ‘현금 수당’이라고 답변했지만 본격 검증은 안 된 것으로 안다. 이 문제는 기관의 운영에 관련된 시스템 문제다. 그래도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따랐으니 거듭 사과드린다. 재임 기간 6년간 받았던 전액(3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용의가 있다. 가족들이 의견 일치를 봤다. 내가 통장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바람에 기획재정부가 최근 특정업무경비 지침을 개선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청문회 때 통장을 공개한 이유는.

 “판사로서 조금도 부정한 돈을 받은 적이 없어 떳떳했기 때문에 통장을 공개했다. 평생 부동산 거래도 딱 한 번 했다. 전업주부인 아내가 4남매 키우면서 알뜰하게 살림했다.”

 -관행에 따랐다고 해도 책임은 져야 하지 않나.

 “관행의 문제를 한 개인이 다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가. 딸아이들이 출근길에 (취재 경쟁하던 언론에 의해) 상해를 당하고 가족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내가 소수의견을 많이 내다보니 (법원 내부에) 안티 세력도 생겼다고 들었다. 국민기본권과 국가공권력 중에서 내가 공권력 편을 든다고 비난했다. 호사스럽게 하지는 않았지만 소통을 위해 누구 못지않게 밥도 많이 샀다. 그러나 법관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자세로 하면 부화뇌동(附和雷同)이다.”

 -요즘 항간에 ‘헌재가 문제’라는 말이 나돈다.

 “지난 25년간 헌재가 민주화와 국민기본권 향상에 기여했는데 참 안타깝다. (헌재재판관 출신의 행정부 이동에 대해선) 인사권자를 존중해야겠지만 재판관의 임기를 존중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누리당은 청문회 제도를 개선하려고 한다.

 “도덕성 검증뿐 아니라 해당 직무에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자질 검증의 장으로 개선되길 바란다. (청문회를 치를 공직자들은) 관례라고 용인되던 부분도 작심하고 문제 삼으면 비난받을 수 있으니 한 번 더 되돌아보고 아예 논란의 소지를 없애길 바란다.”

 이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거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함에 따라 헌재 소장 문제는 표결을 하지 않는 한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4일 이 후보자 거취는 표결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조차 표결에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홍일표 의원은 5일 라디오에 출연해 “당내에서도 반대 기류가 강해 표결을 하더라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통합당은 급한 건 새누리당이니 표결을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식이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표결하려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청문보고서 채택을 이제 와서 해주진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으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을 할 수 있는 길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뿐이다. 그러나 강창희 의장실 관계자는 “인사 문제를 직권상정한 전례가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변수는 있다. 민주당이 표결을 받아주는 경우다. 당 관계자는 “이동흡 후보자 문제가 부각되면 민주당이 오히려 주도권을 잡을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글=장세정·강인식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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