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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중국 기술추격,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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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 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추격연구소장

중국의 기술 추격이 무섭다. 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세계 1위에서 밀려난 한국 제품이 26개, 그중 12개는 중국에 밀렸다. 삼성이 최근 출품한 110인치 TV의 패널도 중국 BOE가 만들었다. 이 BOE가 어떤 회사인가. 바로 과거 현대전자의 LCD패널부문인 하이디스를 인수했던 회사다. 중국은 뒤에서 한국을 쫓아오는 추격 단계를 지나 이제는 한국을 넘어서는 ‘추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 중국 브랜드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국 휴대전화가 하나 둘 생기더니 2003년에는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물론 저가품 중심의 추격이었다. 이제는 고가 분야에서도 중국 휴대전화가 시장을 장악할 기세다. 중국 브랜드는 3G 교체 시기를 적절히 이용해 시장 주도자로 치고 나섰다. 지금은 삼성이 13%로 간신히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을 뿐 나머지는 2등을 한 레노보(12%)를 포함해 3, 4, 5 등이 모두 중국 브랜드다. 과거 1등이던 노키아와 애플은 그 밑을 기고 있다.

 중국 기업은 미래 성장동력 부문에서도 이미 한국을 추월해 시장을 선점을 하고 있다. 신에너지 산업인 태양열 분야에서 세계 1위이고, 풍력 분야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2005년에 세계 풍력발전용 터빈 생산의 상위 10개 기업에 중국은 하나도 없었으나, 2010년에는 사이노벨을 포함해 4개의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 분야의 상위 10등 기업 중 한국 기업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개도 없다.

 산업주도권의 국가 간 이전은 흔한 일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미국 모토로라가 발명한 이후 핀란드의 노키아를 거쳐 이제 한국의 삼성으로 넘어왔다. 조선은 유럽이 강국이었으나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고, 이제 중국에 갈 태세다. 반도체는 미국의 인텔이 산업을 일으킨 이후 일본이 주도하다가 한국으로 왔다. 이런 주도권 이전은 모든 산업에서 일어났기에 필자는 이를 ‘추격사이클’이라고 부르고 그 결정요인을 분석해 왔다. 그 원인으로는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기를 이용한 후발자의 신기술 선점 ▶경기변동과 시장수요의 급변 ▶정부의 산업정책 및 규제 등이 꼽힌다.

 중국의 경우 이들 세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서방국의 침체에 따라 중국 시장의 결정권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보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먼저 새 기술 경제패러다임에 올라타고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산업 주도권 싸움은 자동차와 통신수단 및 석유, 그에 뒤이은 전자칩의 발명과 극소전자 혁명 등의 영역에서 벌어졌다. 초반 산업 패러다임의 주인이 미국이었다면 후반 이후에는 일본이 맹추격했다. 미래 전장터는 제3차 에너지 혁명, 즉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다. 이 산업을 주도하는 나라가 21세기의 주인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중국의 시대가 될 것인가. 풍력, 태양광, 지열, 바이오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의 약진을 보면 그럴 만하다. 어쩌면 우리는 21세기에 일본이 아닌 중국을 추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지 모른다. 우리가 제3차 에너지 혁명에 적극 대응해야 할 이유다.

 현 정부는 정권 초부터 녹색성장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를 못 내고 있다. 동반성장이라는 화두도 제시했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동반은 없고 치열한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적어도 신에너지 분야에서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새 정부는 이 분야가 중국 등 경쟁국에 의해 선점되지 않도록 치밀한 주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동반성장의 틀에 갇혀 세계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한경쟁에서 뒤처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 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추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