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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커비전] 송혜교보다 차범근이 나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탤런트 송혜교가 세계적인 이벤트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조 추첨 행사의 추첨자 13명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됐다.

1일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에서 열리는 조 추첨 행사는 한·일 월드컵의 실질적인 첫 이벤트다. 전세계 매스컴이 이 행사를 주목한다. 왜냐하면 어느 조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월드컵 성적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 추첨자의 손길 하나 하나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조 추첨자로 선정되는 것은 곧 세계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다.

송혜교가 조 추첨자로 선정된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비록 그녀가 예쁘고 상큼한 이미지의 탤런트이고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큰 인기를 얻어 이른바 한류(韓流)의 주역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축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일본월드컵조직위원회(JAWOC)가 추천한 인물들을 보자. 영원한 축구황제 펠레와 화려한 오렌지 군단의 주역 요한 크루이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을 8강으로 이끈 로저 밀러, 중국 여자축구의 스타 쑨원, 98 프랑스 월드컵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미셸 플라티니 등 각 대륙을 대표하는 축구인들이다.

더구나 한국의 여성 국제심판인 임은주씨는 정작 한국에서는 추천을 받지 못했지만 FIFA 추천으로 추첨자가 됐다. 일본도 축구선수 출신인 오카노 순이치로 일본축구협회장, 98 프랑스 월드컵 때 일본 주장으로 활약한 이하라 마사미를 추천했다.

이들 면면을 보면 송혜교는 '튀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조훈현 프로바둑기사와 산악인 박영석씨 역시 어색한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조훈현씨와 박영석씨는 축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한국의 명성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들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축구에서 세계 최고의 행사에 나선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결정인 것이다.

월드컵에 관련된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축구를 도구화해 인기에 연결시키려는 연예인들과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인만 북적거리고 자신들은 찬밥(?)이라는 축구인들의 자조어린 푸념을 조직위원회는 들었는지 따져 묻고 싶다.

'한국은 몰라도 차붐은 안다'고 할 정도로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유럽에 널리 알린 차범근, 한국축구 사상 월드컵에서 첫 골을 넣은 박창선, 86 멕시코 월드컵 때 이탈리아의 골문에 총알 같은 골을 때려 넣었던 최순호, 혹은 54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해 한국 축구의 존재를 알린 원로를 조 추첨자로 뽑았다면 보기에도 좋고 축구인들에게 월드컵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효과도 얻었을 것이다.

지난 프랑스 월드컵 때도 지단.피구를 포함해 현존하는 세계적 축구스타들과 흘러간 축구 영웅들이 조 추첨식의 주인공이었다.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월드컵에 무려 다섯차례나 출전하며 나름대로 노력해온 한국 축구인들의 자존심이 요즘 사정없이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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