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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재정정책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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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재정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나라빚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정부가 국내외에 공식적으로 공표하고 있는 국가채무는 국제통화기금(IMF)기준에 따른 것으로 지난해 말 현재 1백20조원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부에선 공적자금 중 회수 불가능한 부분과 국민연금 등의 잠재적 부채까지 포함할 경우 국가채무가 약 4백조원으로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OECD 평균(72%)을 초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OECD 평균치는 그들 국가의 직접부채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GDP의 1백%가 넘는 잠재적 부채는 포함돼 있지 않다.

국가부채의 규모만을 놓고 볼 때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안정적이다. S&P사는 지난달 13일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상향조정하면서 건전한 재정상황을 그 이유의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국가부채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는 선진국 진입 과정에서 늘어날 복지재정과 관련, 건강보험의 재정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다. 시혜적 복지가 아닌 생산적 복지개념으로 사회적 형평과 경제적 활력을 함께 유지하는 윈-윈(win-win)전략을 택할 것이다.

또 공적자금의 회수율을 높이는 데 최대한 노력하면서 회수가 불가능한 부분은 장기채 차환을 통해 상환시기를 분산할 계획이다. 공적자금은 지난 30여년간 누적돼온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것이다. 그 효과도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상환해 나가는 게 불가피하다.

국민연금의 경우 현금 흐름 기준으로 볼 때 앞으로 20년 이상 흑자가 지속돼 단기간 내에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다. 정부는 연금의 적자 누적을 방지하기 위해 1998년 재정재계산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30여년간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신뢰를 얻어 외환위기를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정부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바를 겸허히 수용해 건전재정 기조를 지속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과 실천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다.

재정정책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따라서 2003년 균형재정 목표에 집착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요즘처럼 국내외 경제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건전재정을 이루는 첩경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활성화→세수증가→재정건전화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이는 IMF나 OECD의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바다.

일부에선 이러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경기를 살리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재정위기 상황이 우리나라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엔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의 역동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일본과 크게 다르다.

일본의 재정적자는 만성적이며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백30%를 넘어 우리의 6배에 달한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도 우리의 3배에 가깝다. 중앙은행 재할금리도 0% 수준에 접근하고 있어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촉진에 한계가 있다.

반면 우리는 과감한 금융 구조개혁을 추진해 왔고, 새로운 분야인 IT산업의 발전속도가 빠르고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국제경기가 좋아지면 강한 성장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김진표 재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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