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통합 한달 국민은행호 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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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국민.주택은행을 합친 통합 국민은행이 출범한지 한달밖에 안됐지만 '국민은행이 무섭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국민은행이 금리를 내리는 것은 총 한방 쏘는 것이지만 우리 쪽에선 미사일을 맞는 느낌이다(H은행 지점장)." 두 은행의 합병은 1년 전에 선언된 것인데,이제 와 큰일이 난 것처럼 느끼는 것은 합병은행이 내부 갈등으로 삐걱거리리란 예상이 빗나간 데서 비롯된다.

◇ 국민은행이 두려운 이유=국민은행의 힘의 원천은 덩치다. 자산 1백80조원(세계 60위권, 아시아 13위권)에 2만명에 이르는 직원,1천1백여개 지점과 9천여대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거느리고 있다.

2위인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자산은 92조원으로 국민은행의 절반이다. 우리금융의 직원은 1만3천여명, 지점은 9백45개다.

한 금융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비용이 들지 않는 무원가 자산(자본금+대손충당금+내부 유보이익+별단예금 등)으로 8조원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얻는 4천억원(연5% 운용)의 이익을 포기하면 대출금리를 1%포인트 낮게 해 다른 은행의 대출 40조원을 빼앗을 수 있다. 이 정도의 '금리 공격'이 일부 은행에 집중될 때 자산 30조~40조원의 은행 한두 곳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국민은행은 자본시장에서도 영향력이 큰 공룡이다. 유가증권을 53조원어치 갖고 있는 국민은행은 농협이나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앞서는 큰손이다.채권.주식 전문가들은 국민은행이 1년 안에 '돈이 되는 힘자랑'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 또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프라이빗뱅킹(PB)시장에도 뛰어들 태세여서 씨티.HSBC.하나은행 등이 주목하고 있다.

인터넷.신용카드 사업 등에서도 2천9백만명에 이르는 고객을 가진 국민은행이 최강자가 될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살길 찾기 바쁜 다른 은행들=신한금융지주회사 관계자는 "국민은행 통합이 예상보다 순조로워 2~3년동안 지켜보며 대응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을 버렸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최근 국민은행에 대항하는 합병 논의에 끼지 못할 경우 '왕따'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싸여 있다. 특히 2위권 우량은행으로 자리잡으려는 신한과 하나은행이 초조한 모습이다.

김정태 행장은 "2천4백년 전 중국 전국시대 때 최강국 진(秦)과 힘이 약한 6국 사이에 벌어진 합종과 연횡이 은행권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여유있게 내다봤다.

국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이 서로 합쳐 국민은행에 대항하는 것이 합종이고, 강자인 국민은행과 손을 잡고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연횡이다.

그는 "나머지 은행들이 모두 합치진 못할 것"이라며 "합병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뒤 필요하다면 국민은행이 추가 합병을 추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화학적 통합은 두고봐야=국민은행은 지난달 조직개편에서 영업조직인 개인고객본부와 기업고객본부를 각각 두개로 나눴다. 옛 국민과 주택은행의 고객을 나눠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합병은행이 화학적 통합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옛 국민.주택은행이 합병과정에서 적지 않은 갈등을 보인 점도 부담이다.

업무통합은 전산망이 통합되는 내년 추석 무렵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그때까진 '한지붕 두가족'상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그래도 11월 한달만 놓고 보면 金행장이 예상보다 빨리 합병은행을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변에선 스타 최고경영자(CEO)로 부상한 金행장의 개인적 파워가 작용한 것으로 본다.

옛 국민은행측 노조관계자는 "직원들이 金행장과 한두시간 만나고 나면 임기응변에 능한 그의 말에 푹 빠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ksl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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