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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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렇지만 국회가「테러」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추구에만 그 대부분의 정력을 소비하고 나머지안건의 심의와 처리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제57회 임시국회는 제6대 국회가 입법부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회기나 다름이 없다.
이번 회기 중에 다루어야할 법률안 만해도 1백87건에다 합의·건의안이 80건, 청원이 3백36건으로 주야를 가리지 않고 안건의 심의처리를 서두른다해도 그것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이와 같이 회기 중에 처리를 요하는 안건이 산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건의 경중과 완급에 따라 그것을 착실하게 처리하는 대신 국회의 거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테러」사건을 위요한 정치적 공방전에만 집중하다시피 함으로써 마땅히 처리해야할 중요안건의 심의를 거의 방임상태로 천연 시켰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처사라고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지금과 같은 타성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제57회 임시국회가 폐회된다고 하면, 정기국회는 국정감사와 신년도예산안심의 때문에 누적된 안건을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요, 또 내년이 되면 선거 때문에 국회가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니 결국 6대 국회는 중요안건의 태반을 미해결로 남겨둔 채 문을 닫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국회운영에 대해서 국회간부진에게 각별히 주의를 환기하고싶은 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제 회기는 불과10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국회는「테러」사건 등을 에워싼 여·야간의 정치적 공방전이 결코 그 유일한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자각하여 이사건의 처리는 주로 특별조사위원회에 일임하고 각 분과위원회나 본회의는 국회본연의 자세에 돌아가 누적된 법률안과 그 밖의 안건을 심의처리 하는데 주력해주길 요망한다.
대저 6대 국회는 여·야가 다같이 의사당을 저마다 당리당략의 전시효과를 노리는 장소로 이용하려고만 해왔기 때문에 비 건설적인 정치싸움에만 열을 올렸고 예산심의, 국정감사, 법률제정 등 국회의 고유한 임무를 다하는데는 매우 소홀했다. 이 까닭으로 국회는 상호대립 하는 당리당략사이의 각축장이 되었을망정 국민을 대표하여 국리민복의 실현을 추구하는 기관이 되지는 못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국회는 정쟁에만 골몰하는 곳이요, 국가건설에 보탬을 주는 기관이 아니라는 인상을 줄 위험이 없지 않다.
국회의원과 의회정치에 대한 대중의 뿌리깊은 시의와 불신감의 만연도 따지고 보면 결국 비생산적인 정쟁에 열중하기 쉬운 국회의 자업자득의 소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현대는「매스콤」의 시대요, 따라서 정치는「매스콤」을 통한 PR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가 PR위주의「쇼맨쉽」만을 노려서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이 대중을 현혹하는「쇼맨」이나「쇼·클럽」이기 전에 언행에 있어서 성실한 인격과 성실한 단체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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