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진주 「시가족」동인|「흑기」동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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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풍류의 고장으로 알려진 이곳도 겉으로 보기엔 한적하기만 하다. 한창인 가뭄에 남강의 물줄기는 야위고, 겹겹 산으로 돌리워 아늑히 들어앉은 시가는 후룸한 대기 속에 졸고 있다. 해방 후 다른 지방에 앞서 활발한 문화활동이 벌어진 이곳. 그 내부에 잠겨있는 활기를 보고 싶었다. 20년 동안 산발적인 움직임 속에 명멸한 동인지만도 너덧 가지, 이 고장문학 전통을 짐작케 한다. 낯선 거리를 헤매던 끝에 찾던 사람들을 만난다. 「시가족」 동인들. 5년 전 발족 당시의 회원은 이 고장 출신 30대를 중심으로 한 9명. 모임을 갖게된 동기를 짤막하게 『답답하니까 나섰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디라 할 것 없이 다 그렇겠지만 활동범위는 국한돼 있고 작품 발표는 여의치 않다. 지방지의 문화면에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도 기회가 좀처럼 드물고 보면 답답하다는 한마디로 고충은 충분히 함축됨직하다.
답답해서 내지르는 함성은 두터운 벽에 부딪쳐 되돌아 올 뿐, 울분은 쌓이고, 언어 이전에 발상엔 금이 가고 의욕은 시들어지기만 하더라고.
이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61년 가을 「영도천」이라는 제호로 제1집을 내놓았다. 예상했던 이상으로 반응은 컸다. 제호가 말해주듯 「제로」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겸손이었지만 작품수준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만만치 않은 수련과정을 엿보게 한다. 작업은 매년 1권씩 4집까지 비교적 순조롭고 재미있게 계속되었다.
재미 이상으로 바란 것도 없었지만-.
재미라야 무슨 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쓴다는 일 자체도 괴로운데 주머니를 털어 투자까지 하면서 내놓아야 하는 판이니, 이건 어느 동인지의 경우나 매일반이지만.
다만 속에 뭉치는 덩어리를 풀어 소화시키고 신열을 식힐 수 있는 것만도 다행스런 재미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당초에 앞세웠던 열의는 차츰 식어지고 개개회원의 성격, 문학적 생리가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사태는 야릇하게 발전하여 지금은 제 자리 걸음을 치고 있다.
「제로」에서 출발한 「영도천」은 이 근처에서 요절하고 마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기우일지도 모른다. 일부회원들이 물러선 공석을 다시 채워 속간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지만 9명중 작품을 낸 회원은 다음과 같다.

<동인명단>문의식·조인영·김경자·이덕·박용수
한편에서는 7월 창간을 앞둔 「흑기」동인들이 새로운 의욕으로 일을 시작하고 있다. 『「흑기」란 부정을 뜻한다. 못마땅한 질서와 권위의식에 사로 잡혀 타산을 일삼는 「프로」들에 대한 「아마추어」로서의 반발이며 부정』이라고 그들은 열을 올린다. 동인들은 박용수씨 만이 30대고 나머지는 모두 20대의 대학 국문과 출신들로 고집도 있고 패기도 있는 청년들이다.

<시단 일부의 그릇된 풍조를 지양하고 당면한 현실을 직시한다. 동인들은 이념을 같이할 뿐 아니라 새로운 가치창조를 위해 보조를 같이한다>
출발에 앞서 내놓은 선언을 요약하면 그들의 지향하는 목표를 알듯하다.
박용수씨는 시가 대중에게 외면 당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대중이 외면하게끔 만든 기성시단은 반성해야할 것이라고 소신을 밝힌다.
앞으로 다른 지방 동인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가지고 싶다면서 전국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고취하고 자극을 주기 위해 동인지상 제도 같은 것이 마련됐으면 하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한다.
현재의 「멤버」는 5명, 정회원은 7명, 남자들만 모이고 보니 너무 껄껄해서 여자회원 2명을 맞아들이고 싶은데 적격자가 없어 고민중이라고 한다.

<동인명단>박용수·정재필·최용호·강동계·김영화 [진주서 인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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