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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스페셜올림픽] 출발 전 항상 말해요 … 넘어져도 다시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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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스페셜올림픽에 참가한 김찬미에게 스키는 친구이자 엄마 같은 존재다.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대회 둘째 날인 31일 오후 1시40분.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 메가그린 스키장.

 다섯 번째 기문을 지나치던 김찬미(19·서울동천학교) 선수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다. 장내 아나운서가 “김찬미 선수가 기문을 넘기 위해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박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방송했다. 슬로프 밑에서 대기하던 캐나다·미국 코치진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스키를 비스듬히 세운 찬미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슬로프를 거슬러 올랐다. 이날 기온은 섭씨 6도, 지난달 29일 열린 개막식 이후 가장 따뜻한 날이었기에 눈이 녹아내린 슬로프는 미끄러웠다.

  찬미는 이번 스페셜올림픽 알파인스킹 수퍼대회전 부문에 출전했다. 1차 시기에선 43초대를 기록해 상위권에 들었지만 스키가 걸려 넘어진 2차 시기에선 1분을 넘겼다.

 찬미는 원래 육상 유망주였다. 2010년 열린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선 서울시 대표로 출전했다. 400m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발이 빨랐다. 중거리가 주 종목이었다. 여름에는 육상에 집중했고 겨울에는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몸을 풀었다. 그러다 2009년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영화 속에서 찬미와 비슷한 정신지체를 겪고 있는 중학생 봉구를 봤다. 봉구는 장애를 극복하고 스키점프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찬미는 “나도 저렇게 열심히 (스키를) 타면 세계에서도 빛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힘들 때마다 ‘국가대표’를 다시 본다는 찬미는 지금까지 일곱 번 정도 봤다고 한다.

 그렇게 2010년 겨울 알파인 스키를 시작했다. 생전 처음 신어본 스키. 앞으로 가는 것도 방향을 바꾸는 것도 어려웠다. 스키는 육상보다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육상에서 필요한 지구력뿐만 아니라 기문을 넘는 기술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연습은 고됐다. 함께 스키를 시작한 또래 친구들 중 열에 아홉은 집으로 되돌아갔다.

찬미는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지금 한 번만 더 타면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생각에 (슬로프에) 다시 올라갔어요”라고 말했다. “넘어지고 또 다시 넘어져도 (영화 속) 선수처럼 대회에서 실격을 당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라고도 했다.

 2011년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전국 장애인 동계 체육대회에서 알파인스킹 종목에 처음 도전했다. 1분5초77을 기록한 찬미는 스키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은메달을 땄다.

 스키는 친구이자 엄마가 됐다. 부산에서 태어난 찬미는 엄마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시설에 맡겨져 자랐다. “기문 옆으로 붙어서 내려가야 빨리 갈 수 있어요. 근데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될 때는 이불 속에 들어가 몰래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찬미는 육상을 통해 힘들어도 참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스키를 배우면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웠다. 친구들은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지만 찬미는 스키 동영상을 반복해 본다. “지금까지 이렇게 혼자 열심히 살았는데 앞으로 더 힘들더라도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국가대표가 꿈인 찬미에게 현실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지체장애 선수들은 학교 졸업 후 대부분 사회적 기업 등에 취직한다. 생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건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길이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는 찬미는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를 붙잡았다.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좋아서 기억해 뒀어요. 출발하기 전에 항상 하는 말이에요. ‘계속 넘어지더라도 꿈을 잃지 않고 달린다.’”

평창=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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