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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막을 해법, 전력 저장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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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구자균
LS산전 대표
지능형전력망협회장

여름이 더운 것과 겨울이 추운 것은 당연지사지만, 유독 지난해 이후 공공기관이나 주요 기업 등에 들어설 때 확연히 “덥다”, 혹은 “춥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매년 전력 피크 기간에 냉·난방을 줄인 결과다. 전력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인데, 왜 갑자기 전력이 부족하게 되었을까? 정부는 2년마다 향후 전력수요를 예측해 수급계획을 발표하는데, 예측을 잘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왜곡된 전력요금제도가 원인 중 하나다.

 현재 전력요금은 타 에너지 요금에 비해 저렴해 일부에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쓰고 있다. 이는 시간을 갖고 국가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숙제겠으나, 당장 이를 해결할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가깝게는 전력의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전력공급을 늘리기 위한 발전소 건립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단순히 수요를 제한하기에도 형평성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전력의 수요는 계절·시간대별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력공급이 부족한 날에도 하루 종일 전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수요가 몰리는 ‘피크 타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력수요를 분산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력을 저장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단순히 피크타임에 전력사용 자제를 권유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하는 방법 외에는 해결방안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력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인 ESS(Energy Storage System) 기술이 획기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잉여 전력이 있을 때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면 수요 분산 효과는 더 커지게 된다. 전력 피크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부하가 커질 때 가동하는 고비용의 발전기 사용빈도를 감소시켜 전력생산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나아가 신재생 발전설비와 ESS가 통합적으로 보급될 경우 국가 차원의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질 것이며, 국가 내에서도 각 지자체 등 개별 단위의 에너지 자립도 역시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가까운 일본에서 이 같은 일이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전력 공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국가적 차원에서 신재생 발전원과 ESS의 보급을 촉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본 내 에너지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의 기업들도 주택용 태양광 모듈, 리튬이온 2차전지, 전력변환 장치 등을 패키지로 묶은 상품을 개발해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와 같이 ESS가 가져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탄소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한편, 그린 에너지 보급을 촉진해 환경문제까지 해결하는 데도 기여할 전망된다. 우리 정부 역시 국내에 ESS 보급을 촉진하고 국내 기업들이 ESS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그린 에너지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구자균 LS산전 대표 지능형전력망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