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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과 일자리복지뉴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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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근 기초노령연금을 월 20만원으로 인상하고 이를 국민연금과 통합·운영한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 정책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추가 재원의 조달방안과 기초노령연금 인상이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다. 국민연금기금을 사용하지 않고 전액 국고에서 추가 재원을 부담하기로 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재원 조달 방안과 기존 가입자의 탈퇴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아직 분명히 제시되지 않아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중앙일보 1월 31일자 10면)

 지금의 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부분적 조정이 아니라 전면적 개편을 추진하고 개편의 기본 원칙을 조기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우선 65세 이상 노인의 40% 이상이 빈곤층에 속하고 이로 인해 노인 자살률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초노령연금의 인상은 불가피한 조치다. 또한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해 이를 모든 노인에게 연금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보험금 납부총액에 비례해 지급하는 ‘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하는 방안 역시 매우 타당한 개선 조치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기초연금에 필요한 재원은 이미 발표된 대로 국고로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과다한 재정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그 수준은 소득 및 재산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례연금은 자신의 기여 정도에 따라 기초연금에 추가해 지급되기 때문에 기초연금제도가 도입된다고 해서 국민연금을 탈퇴할 필요는 없게 된다.

 국민연금은 도입 초기에는 소득대체율을 70%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그 후 몇 차례의 개편 과정에서 노후 생계보장에 미흡한 40% 수준으로 하향 조정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도 아울러 개혁 방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9%에 불과한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의 퇴직연금제도가 중소기업에도 확대될 수 있는 유인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 하나의 개혁과제는 2012년 10월 말 현재 384조원에 이르고, 2040년대 중반에는 25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해 ‘일자리복지뉴딜’ 사업의 추진을 검토하는 것이다. 1988년 국민연금 설계 당시 상당한 규모의 기금이 적립되는 ‘적립 방식’을 택한 것은 연금재정의 건전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적립금을 경제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국책사업에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기금의 국내 투자가 한계에 이르자 이를 해외주식 또는 부동산 매입에 사용하려고 한다. 이는 국민 저축을 외국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기금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해 의결권을 행사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이 역시 자칫 ‘연금사회주의’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

 경제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양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수출제조업은 기술 및 자본집약적 성격이 강해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중심이 돼 일자리복지뉴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집행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복지뉴딜 수립의 주체는 헌법 제93조에 설립 근거가 있고 관계법도 마련돼 있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돼야 할 것이다. 상설 사무국도 필요한데 한국 경제정책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KDI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설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국민연금의 개혁과 동시에 일자리복지뉴딜이 추진된다면 국민연금은 경제활력을 유지하면서 양극화를 완화하는 시대적 과제에 대처하는 ‘마법사’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