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비즈니스 전사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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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 낙오자는 필요없다 140km 3박4일 지옥행군
■ 공포심을 이겨내라 50m 높이 철탑 오르기
■ 부드러움은 강하다 꽃동네.장애인시설 자원봉사

취직하기도 힘들지만 어엿한 직장인이 되는 건 더 어렵다. 기업마다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혹독한 교육 과정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새해들어 각 기업들이 지난해 뽑은 신입사원들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다.

기업들은 이들 신입사원을 훌륭한 직원으로 키우자면 혹독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신입사원들은 50m 높이의 철탑을 오르거나 지옥의 행군을 하는 등 기업들이 나름대로 준비한 교육과정을 소화해야 한다. 각 기업들의 신입사원 교육 현장에 가본다.

# 지난해 말 그룹 공채 사원으로 입사해 연수과정을 밟고 있는 한화의 '2000-7기' 기수 1백10명. 이들은 15일부터 3박4일 동안 '지옥의 행군' 코스를 통과해야 했다.

모기업 격인 화약 공장이 있는 인천을 출발해 안산과 시흥.화성을 거쳐 천안과 평택을 돌아 경기도 용인 한화콘도까지 장장 1백40km를 매서운 겨울 바람을 그대로 안고 행군한 것이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 행군은 밤 늦게까지 이어진다. 50분동안 걷고 10분을 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하루에 32km에서 많게는 40km이상을 걸어야 한다.

문자 그대로 강행군이다. 여자 신입사원이라고 예외는 없다. 이번에 함께 입사한 여자 신입사원 13명도 함께 행군했다.

회사는 행렬 뒤에 의사와 간호사를 태운 앰뷸런스를 항상 대기시켜 놓았다. 자신의 체력과 한계를 테스트해 보자는 뜻이 담긴 훈련 코스인 만큼 '돌발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행군 중의 숙소 역시 열악하다.

도중에 마주치는 폐교나 식당의 방을 빌려 쪽잠을 재운다. 하루 종일 행군하느라 지친 몸을 제대로 추스를 여유도 주지 않는 셈이다.

1999년부터 시작된 한화의 행군 코스는 극한 상황을 체험하는 과정인 만큼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한화그룹 인력개발원의 정형석 과장은 "3년 전 겨울 행군 때에는 한 여자 신입사원이 기력이 떨어져 쓰러지자 같은팀 동료들이 앰뷸런스에 있던 매트리스로 실어나른 적도 있다"며 "모두들 낙오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말했다.

또 부상을 당해 행군을 계속하기 힘든 상황인데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끝까지 완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 국내 2위의 이동통신서비스 업체인 KTF는 강원도 원주의 KT연수원에서 지난해 12월26일부터 1월17일까지 22박 23일의 일정으로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백8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60명의 신입사원이 교육대상이다.

신입사원 교육의 하이라이트는 50m 높이의 철탑에 오르는 훈련. '일하고 싶은 KTF' 현장체험의 일환으로 회사측이 마련한 교육이다. 지난 13일 오전 신입사원 60명은 한명도 빠짐없이 기지국 철탑 앞에 섰다.

잠시 후 한명씩 50m 높이의 철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는 표정이던 신입사원들은 높이가 높아지면서 점차 공포에 질리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철탑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다시 땅으로 내려와서야 그들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도전하는 시간을 갖고 통화 품질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신입사원 이지영(27)씨는 "아래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높고,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며 "첨단 업종이라 모두 사무실.책상 앞에서만 근무하는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는 선배들이 날마다 이런 일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고 놀랍다"고 말했다.

철탑 오르기를 마친 이들은 이날 오후 원주 시내 곳곳에 흩어져 휴대전화 판매와 홍보활동도 펼쳤다.

KTF 박재홍(43)인재개발팀장은 "일하고 싶은 KTF인, 강한 KTF인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철탑오르기를 기획했다"며 "최근 신입사원들은 과거에 비해 '자기 주장'이 강한데 이 교육을 통해 조직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알려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팀워크"라며 "신세대의 트렌드를 이해하면서 개인과 조직의 조화, 체험을 통한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태도 함양을 신입사원 교육 방향으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지난해 말 뽑은 신입사원 1백5명의 교육 코스(20일부터 열흘간 실시)에 경기도 가평 꽃동네를 집어넣었다. 이틀 일정이다.

신입사원들은 이곳에서 현지 주민들인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수발을 들어주는 자원봉사 체험을 하게 된다. 꽃동네 자원봉사 체험은 이 회사 김충훈 사장 아이디어다.

대우전자가 어려웠던 시절 회사를 믿고 도와준 국민들에게 보은(報恩)하는 심정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지난해 말 기존 대우전자의 우량법인만을 따로 추려 새로운 법인으로 출발했다.

이 회사 교육담당 이원석 과장은 "신입사원들이 봉사하는 마음, 겸허한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는 자세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꽃동네 자원봉사를 하며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고, 이웃의 사랑과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스코 신입사원도 지난 14일 경북 경주에 있는 뇌성마비.자폐증.다운증후군 등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무료 보호시설인 예티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중 남자 신입사원 21명은 인근 화산테마랜드에서 이 쉼터의 정신지체 장애인과 함께 목욕을 했다. 쉼터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고, 신입사원들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밖에 여자 신입사원과 나머지 남자 신입사원은 쉼터의 화장실.주방 등 실내청소와 장애인들의 숙소를 청소했다. 이들은 폐타이어로 쉼터 안의 축대를 쌓는 작업도 했다.

표재용.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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