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농업문제도 경제 논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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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쌀을 비싸게 사주고 해서 억지로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제 덮어놓고 정부에 쌀값을 올리라고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원하건, 원치 않건 (개방)해야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26일 충북 도정보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농가소득을 보전해줘야 농촌이 살아난다'는 논리로 수매가를 올려온 그전과 다른 모습이다. 농업 문제를 푸는 데 시장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농업문제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복잡하다.

농민들은 쌀값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정부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수매가 인하를 반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정치권도 '소득보전 대책 없는 쌀값 인하에 반대한다'며 바람을 잡고 있다.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농민과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12월 4일 국무회의에 올릴 정부 추곡수매가격 안을 정하는 데도 장차 쌀산업을 어떻게 끌고갈 것인지에 대한 정책방향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는 분위기다. 어떻게 정해야 무리없이 국회에서 통과될 것인지에 더 신경쓰고 있다.

벌써 내년 추곡 수매가는 뻔한 방향으로 결론나리란 관측이 돌고 있다. 농림부가 양곡유통위원회 건의보다 인하폭을 약간 줄여 국회에 제출하면 의원들끼리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동결하거나 정부안보다 인하폭을 더 줄일 것이란 시나리오다.

재정경제부가 농가소득 보전방안으로 한계농지의 용도 규제를 풀자고 제안했다. 농림부는 "아직 검토한 바 없다"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용도변경을 허용할 경우 지역간 형평성 등 고려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 농지도 식량생산이라는 제한된 관점에서 벗어나 경제 전체를 생각하는 넓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경지정리 등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한 진흥지역 농지는 마땅히 보전해야겠지만, 농지로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한계농지는 어떻게 활용해야 농가소득을 높일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쌀값은 시장원리에 맞춰야 한다면서 한계농지까지 꽁꽁 묶어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한 농민단체 관계자의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정철근 경제부 기자 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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