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돋보기] 요즘 은행들 개인을 좋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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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은행들은 너나없이 소매금융(리테일 뱅킹)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쳐진 국민은행은 원래부터 소매금융을 해오던 곳이고, 외국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제일.한미은행도 소매금융을 강화하고 있답니다.

소매금융의 반대는 도매금융이죠. 그럼 소매금융과 도매금융이 뭔지 알아볼까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소매는 직접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고,도매는 소매업자 등 다른 상인과 하는 장사를 말하죠. 마찬가지로 소매금융은 일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돈장사고, 도매금융은 회사를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소매금융의 대상이 주로 개인이나 가계 또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소매금융은 개인금융.가계금융.소비자금융이라고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도매금융은 기업금융이라고도 부릅니다.

소매금융은 도매금융보다 품(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소매금융은 많은 사람에게 수백만원, 수천만원씩 빌려줘야 하지만 도매금융은 한 건에 수십억원, 수백억원을 빌려줄 수 있습니다.

도매금융의 경우 몇 명의 직원이 수십억원의 대출을 처리할 수 있지만 소매금융에서 수십억원의 대출을 할려면 수십명, 수백명의 직원이 매달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은행들이 소매금융을 늘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소매금융에서 돈을 뗄 확률이 적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도매금융이 훨씬 남는 장사겠지만 도매금융에서는 한 건만 잘못되어도 큰 손해를 입게 돼 소매금융이 더 안전한 장사라는 것입니다.

실제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처럼 요즘 우량 은행으로 꼽히는 은행들은 주로 소매금융에 주력했던 은행들입니다. 개인들을 대상으로 소규모 자금을 굴리다 보니 경제가 나빠져도 상대적으로 손실이 적었던 셈이지요.

반면 한빛은행과 옛 제일은행처럼 외환위기 이후 은행사정이 어려워져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 대부분은 도매금융을 주로 했던 곳입니다.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망하는 등 재벌 계열사까지 무더기로 무너지는 바람에 주로 대기업과 거래했던 이들 은행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요.

사실 도매금융을 주로 했던 은행들이 무너진 원인은 기본적으로 여신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기업의 실제 실력에 대한 평가(신용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부동산 등 담보만 챙기면 대출을 해주곤 했죠.

그러다가 경기가 나빠지면서 기업이 부실해지고 담보로 챙긴 부동산 값마저 떨어지면서 은행들이 망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은행들의 여신 심사와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기업들이 멋대로 덩치를 부풀린 결과 외환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요즘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선진형 여신 심사기법을 도입하고, 기업 여신 전문가(RM)를 적극 양성하는 등 여신 관행을 뜯어 고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답니다. 소매금융이 더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도매금융을 안할 수도 없기 때문이죠.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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