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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처럼 지낸 3년5개월 … 성공하고도 “죄송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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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꿈도 함께 날았다 30일 오후 나로호 발사가 생중계된 경기도 과천시 국립과학관. “다섯-넷-셋-둘-하나-발사!”. 어린이들의 함성 속에 나로호가 땅을 박찼다. 긴장 속에 굳어있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발사 9분 뒤 나로과학위성은 제 궤도에 올랐다. ‘우주강국’에 대한 꿈도 함께 우주를 날았다. [뉴스1]

“죄송하다는 말부터 드리고 싶다.”

 30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열린 나로호 발사 성공 브리핑에서 나로호 발사를 총지휘한 조광래(54)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이 꺼낸 말이다. 성공의 기쁨보다 국민에 대한 죄송함이 앞섰던 것이다. 2009년 8월 나로호 1차 발사가 실패했을 때 나로호 관계자들은 ‘죄인’이 됐다. 2010년 6월 2차 발사 실패와 지난해 두 번의 발사 연기는 이들에겐 형벌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 발사를 앞둔 이들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발사일이 정해지면서 나로우주센터는 비장감마저 감돌았다. 또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손톱·수염을 안 깎고 속옷도 안 갈아입는 연구원도 많았다고 한다.

 이날 저녁 나로우주센터에서 성공의 주역 6인이 함께 모였다. 조 추진단장, 민경주(60) 나로우주센터장, 장영순(51) 나로호발사체구조팀장, 정의승(54) 나로호체계종합팀장, 조인현(50) 나로호체계종합팀 책임연구원, 임석희(41) 나로호발사체추진기관팀 선임연구원이다. 이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그동안 못 다한 얘기를 털어놨다.

조광래 나로호발사추진단장(왼쪽 넷째)이 나로호 3차 발사가 성공한 30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영순 나로호발사체구조팀장, 조인현 나로호체계종합팀 책임연구원,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 조 단장, 정의승 나로호체계종합팀장, 임석희 나로호발사체추진기관팀 선임연구원. [고흥=뉴시스]

 조 단장은 ‘한국 로켓 개발의 산증인’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시절 처음 로켓과 인연을 맺은 이래 한국형 과학로켓(KSR) 시리즈 개발을 주도했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한동안은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을 정도였다.

 조 단장은 “2009년 1차 발사를 잘했으면 국민의 관심도 식지 않았을 것이고 발사체 개발이 좀 더 동력을 받았을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이 기회를 줘 3차 발사를 시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그는 “우리가 좀 더 잘했으면 북한보다 먼저 발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발사 시점을 정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측이 서두르지 말자고 해서 연기한 것이 아쉬웠다. 러시아 연구진들이 오랜 한국 출장으로 지쳐 있다 보니 연말과 연시는 가족과 보내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간의 오해도 해명하고 싶어 했다. “10여 년간 제일 가슴이 아팠던 게 ‘러시아에 수천억원을 주고 기술 하나 못 받아왔다’는 말을 들을 때였다. 계속 실패를 하니 말을 할 수 없었다. 우주센터 조립동에는 러시아 1단 로켓이 하나 더 있다. 엔진은 제외됐지만 앞으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이를 주기까지는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장영순 팀장은 1차 발사 후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실패 원인으로 지목된 페어링(위성보호덮개)을 개발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1차 발사 땐 두 쪽의 페어링 중 한 쪽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발사체가 중심을 잃고 자세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후 400여 회의 시험을 통해 결함을 보완했지만 2차 발사 땐 페어링 분리 단계까지 가기도 전에 나로호가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3차 발사의 성공으로 멋지게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장 팀장은 “지상에서는 잘 작동하던 장비가 실제 비행 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힘들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졸였는데 이번 성공으로 큰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

 조인현 책임연구원은 한국이 만든 로켓 상단의 핵심인 2단 발사체(킥모터)를 개발한 주역이다. 킥모터는 연료와 산화제가 혼합된 1.6t의 고체 추진제를 사용해 7t의 추력을 낸다. 조 연구원이 만든 킥모터는 1차 발사 때부터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는 “고체연료를 쓰는 2단 발사체를 완성해 발사 때까지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개발 과정에서 몇 번의 폭발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무사히 우주로 발사돼 다행”이라며 활짝 웃었다.

 정의승 팀장은 “그동안 실패만 하다 보니 이번에 발사가 성공했을 때 저절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다 보니 다들 손뼉치고 난리가 났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다. 전 국민의 여망이 담겨 있는 사업이라 젊은 연구원들은 주말도 반납하고 발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민경주 센터장은 나로호가 발사 준비에 들어간 순간부터 발사대를 박차고 날아갈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나로호에 연료·헬륨가스를 충전하는 시설부터 나로호의 비행 경로를 추적하는 레이더까지 우주센터의 모든 장비가 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민 센터장은 나로우주센터에서의 생활에 대해 “외부에선 농담 삼아 나로우주센터가 공기도 좋고 바다도 가까워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일주일만 생활하면 바다도 보기 싫어진다. 밤에 달을 보면 우울증에 걸릴까 봐 커튼을 쳐버렸다”고 말했다. 민 센터장은 “연구원들이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많이 지쳐 있다. 사명감 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기술진과의 소통을 담당했던 임석희 선임연구원은 “초반에는 문화적 차이로 갈등 아닌 갈등이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눈빛만 보면 서로 이해할 정도가 됐다. 회의를 할 때도 러시아 기술진은 러시아어로 말하고 한국 기술진은 우리 말로 하는데 서로 알아들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나로우주센터=이한길 기자

나로호 발사 성공의 주역들 (사진 왼쪽부터)

장영순(51) 나로호발사체구조팀장

페어링(위성보호덮개) 개발

서울대 기계공학과 학사, KAIST 공학박사

조인현(50) 나로호체계종합팀 책임연구원

나로호 상단의 핵심인 고체 추진체(킥모터) 개발

한국항공대 기계공학 학사, KAIST 공학박사

민경주(60) 나로우주센터장

나로우주센터 건설 총괄, 발사대 설계 국산화

인하대 고분자공학과 학사, 미국 아크론대 이학박사

조광래(54) 나로호발사추진단장

나로호 1~3차 발사 사업 총괄

동국대 전자공학과 학사, 동 대학원 공학박사

정의승(54) 나로호체계종합팀장

나로호 상단 조립 및 검증

한국항공대 항공우주학 석·박사

임석희(41) 나로호발사체추진기관팀 선임연구원

러시아 기술진과의 협력 담당

모스크바국립대 공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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