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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원자력 안전이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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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에 편입하려는 인수위 방침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2011년 3월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가동 원전이 20기를 넘는 우리나라에 외압을 받지 않고 원자력안전에 전념할 수 있는 규제기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국회가 앞장서 의원입법 절차로 원자력안전위원회설치법을 제정하였고 이에 따라 출범한 대통령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이제 겨우 첫돌을 넘겼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다고 하니, 정책기획자의 뱃심이 놀랍다.

 원전 운영에는 위험이 따른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우리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가 50만 명을 넘을 수 있다는 환경단체의 경고가 있었다. 인명 피해가 그처럼 크지 않더라도 민심 소요, 식량수급 혼란, 수출 마비, 외국자본 이탈 등으로 국가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일본산 식품은 물론 아기 기저귀까지 팔리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원자력을 선택했다면 안전관리에 혼신의 정성을 쏟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원전정책은 도마에 올라 있다. 발전소 정전사태 은폐, 기자재 구매와 관련된 비리, 품질보증 체계 허점 등으로 원전 운영에 대한 국민 신뢰는 바닥 수준이다. 원전 운영자의 노력만으로는 신뢰회복이 안 되는 상태다. 기댈 곳은 확고한 안전규제기관이다. 규제기관마저 불신을 당한다면 원전 운영은 포기해야 한다.

 어느 부처가 담당하든 안전규제 자세만 확고하면 된다는 게 인수위 판단인지 모르지만,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원자력안전규제를 교육과학기술부가 담당하던 때를 되돌아보면 규제기관장인 장관은 굵직한 교육현안과 씨름하기에도 바빴다.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국가 미래설계와 구현이라는 막중한 짐이 버거워 원자력안전규제기관장 직무에 충실하지 못할 게 뻔하다. 산하 외청으로 둘 수는 있으나 그러면 원자력 규제기관에 맞는 권위가 부여되지 않는다. 조직은 작지만 임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프랑스·캐나다 등 외국도 원자력규제기관을 정부 수반의 직속으로 둔다. 원전사업이 준국영인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

 지금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 운영에서 소속을 바꾸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따라서 인수위의 계획안은 원전 위험을 경시하거나 그릇된 정보가 입력된 데 따른 오판의 결과라고 본다. 원자력 안전에 관여해온 전문가로서 현행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존속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