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스타열전 (71) - 앨버트 푸홀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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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시즌은 그 어느해보다도 신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타자로서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의 돌풍이 뜨거웠고, 투수쪽에서도 로이 오스왈트(휴스턴 애스트로스)나 C.C. 사바시아(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러나 신인들의 활약을 논함에 있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다. 바로 2001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 앨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그 주인공.

올시즌 활약은 21살의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타율 .329(리그 6위), 130타점(5위), 194안타(5위), 장타율 .610(7위) 등. 161경기에 출전하여 시즌 첫해에 거둔 수확은 신인왕은 물론 MVP후보로도 손색이 없었다.

지난해엔 거의 싱글A에서 활약했다. 트리플A는 7경기만 경험했을 뿐이다. 그러나 경험은 무의미 했다.

겁없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활약은 마크 맥과이어의 부상과 페르난도 타티스(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트레이드 공백을 훌륭히 메꾸는 동시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1980년 1월 16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 도밍고에서 태어난 푸홀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야구와 인연이 깊었다. 야구 선수였던 아버지와 형제들은 물론 그의 누이들마저 소프트볼 선수였던 집안환경에서 어린 푸홀스는 세 살 때 이미 배트와 공을 가지고 놀았다.

16세 때 아버지를 따라 캔자스시티로 이주 하게 된 푸홀스에게 미국은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

탁월한 야구감각은 빛을 발했고 캔자스주 선정 최고 야구선수에 두차례나 뽑히기도 했다. 메이플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야구장학생으로 한시즌을 보낸 푸홀스는 1999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3라운드로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최초의 계약금은 겨우 만달러였다. 푸홀스는 그 해 베이스볼 아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것(만달러)보다는 더 가치있는 선수라고 생각된다."라고 밝히면서 계약을 미뤘다.

계약은 오랜 기간 줄다리기끝에 6만달러에 성사되면서 푸홀스의 선수생활은 시작됐다.

우여곡절끝에 2000년부터 프로에 발을 들여놓게 된 푸홀스였지만 마이너리그는 그의 무대가 아니었다. 싱글A 피오리아에서 10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24, 17홈런, 84타점을 기록하며 카디널스 팀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싱글A 피오리아와 포토맥을 거쳐 그 해에 트리플A 멤피스까지 초고속승진을 계속했던 푸홀스는 멤피스가 속해있던 퍼시픽 코스트리그 챔피언십에서 끝내기 결승홈런을 치면서 시리즈MVP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맛봤다. 그런 페이스는 애리조나 폴리그에까지 이어졌다.

2000년 카디널스 산하 최우수 마이너리거로 선정되기도 했던 푸홀스에게 빅리그에 직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바로 예전에 박찬호에게 한이닝 두개의 만루홈런을 뽑아내면서 한국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카디널스의 주전 3루수 페르난도 타티스가 몬트리올로 트레이드 된 것. 세인트루이스에는 크레이그 파켓과 플라시도 폴랑코라는 백업요원이 있었지만 타티스의 공백은 의외로 커보였다.

결국 카디널스의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는 과감히 푸홀스를 메이저리그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대성공을 거뒀다. 스프링캠프와 프리시즌때 이미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그는 개막전부터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주로 팀의 5, 6번타자로 나서면서 4월 한 달 동안 올린 타율은 .370. 홈런은 무려 8개, 타점은 27점이나 되었다. 시즌 전 '올림픽 영웅' 벤 시츠(밀워키 브루어스)에게 몰렸던 스포트라이트를 끌고 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활약은 계속됐고 관심은 더욱 증대되어 갔다. 5, 6월에도 푸홀스는 무한질주는 이어졌고 지난 7월에는 ‘꿈의 무대’ 올스타전에까지 출전하는 영예를 맛봤다.

7월달에 타율 .240으로 다소 부진했지만만 8월에 다시 월간타율 .375에 홈런 6개를 몰아치며 돌풍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런 활약은 카디널스 후반기 11연승을 이끌며 지구 챔피언으로 등극시키는데 큰 원동력이었다.

그가 올시즌 기록한 130타점은 1930년 월리 버거가 세운 내셔널리그 신인 최다타점(119타점)을 훌쩍 뛰어넘었고, 37개의 홈런은 1997년 노마 가르시아파라 이후 4년 만에 신인이 30개 이상의 홈런을 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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