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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또 다른 기적 … 불가능을 연주한 발달장애 6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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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발달장애 청소년 60명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29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개막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29일 오후 5시20분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콘서트홀. 스페셜올림픽 개막 기념행사로 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시작됐다.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옷, 단원 50여 명이 저마다 손에 하나씩 든 악기. 겉으로는 여느 오케스트라와 똑같았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차분하게 무대 위 자리에 앉아 악기를 조율하고는 지휘자를 응시하는 대신 단원들은 계속 관객을 응시하며 두리번거렸다. 뭔가 불안한 눈빛이었다. 지휘자의 지휘봉이 올라가는 순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사불란하게 윌리엄 텔 서곡을 연주했다. 경쾌하고 신나는 분위기가 객석에 그대로 전해졌다.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조용한 공연장에 나지막이 소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정말 자폐아들 맞아?”

 이들은 발달장애(자폐) 청소년 60명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티머시 슈라이버 스페셜올림픽국제기구(SOI) 회장은 연주 후 “놀랍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스페셜올림픽을 처음 만든 고(故)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존 F 케네디 여동생)의 아들로, 그간 가슴 찡한 사연의 주인공을 숱하게 만났던 슈라이버 회장이지만 이날은 새삼 놀란 눈치였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발달장애 단원으로만 이뤄진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니…. 불가능을 연주한, 위대한 장면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자폐는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한 지적장애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집중력도 떨어진다. 특히 타인에 전혀 관심이 없고 소통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발달장애 아동 수십 명이 지휘자의 지휘봉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는 건 상식적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트하트재단(이사장 신인숙)이 발달장애아 단원 8명을 데리고 2006년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창단할 때 주변에서 다들 말렸던 것도 이런 이유다. 리코더만 겨우 불 줄 알던 발달장애 아동을 데려다 플루트·트럼펫을 쥐어주고 연습하게 했다. 주변에서는 “불가능한 걸 알면서 뛰어들다니, 이건 미친 짓”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실제로 좌절의 순간이 더 많았다. 강남심포니의 트럼본 주자인 박성호씨를 상임 지휘자로 선임하고 전문연주자 10여 명을 단원 사이사이에 배치했다. 그러나 연습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처음엔 서로 연주를 맞춰보는 시간보다 아이들을 안정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무대에 세웠다.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낯선 장소가 주는 긴장감 탓인지 연주 도중 “아! 아!” 소리를 지르며 무대 위를 어슬렁거렸다. 아예 무대 밖으로 뛰쳐나간 단원도 있었다. 발달장애아는 환경 변화에 민감해 공연이 아니라 연습할 때도 똑같은 공간에서만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무대에 선다는 긴장감에다 외부 환경까지 달라지니 감당하기 어려웠던 거다.

 재앙에 가까웠던 첫 공연으로부터 7년이 지난 2013년 1월. 세계 유일의 발달장애 심포니 오케스트라인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장면을 눈앞의 현실로 만들었다. 발달장애 악단이 지적장애 선수를 위한 스페셜올림픽 개막 기념행사에서 공연을 한 것이다. 이지영 하트하트재단 실장은 “전에 악기를 다룰 줄 알던 아이도 합주다운 합주를 하려면 2년이 걸리고, 합주가 가능한 수준에 오른 후에도 1년을 더 연습해야 무대에 설 수 있다”며 “일주일에 네 번, 하루에 4~5시간씩 모든 곡들을 최소 1000번 넘게 연습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스페셜올림픽은 29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다음 달 5일까지 이어진다. 110개국에서 온 3300여 명의 선수단이 알파인스킹과 크로스컨트리 등 7개의 정식종목과 1개의 시범종목(플로어볼)에서 기량을 겨룬다.

안혜리 기자, 평창=이승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스페셜올림픽=전 세계 225만 지적 장애인들을 위한 아마추어 스포츠 축제다. 1963년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의 동생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가 지적장애인 1일 캠프를 개최한 게 시초다. 승패보다는 도전과 노력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1·2·3위에게는 메달을, 나머지 참가자에게는 리본을 달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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