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 일 박사의 경제해법 찾기] 쌀농가 경착륙 막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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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생 2백주년을 맞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바스티아는 풍자와 재치 넘치는 글을 통해 자유무역과 애덤 스미스의 시장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전파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보호무역의 그릇된 논리와 그 폐해를 강조하고 자유무역의 장점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스스로 꾸며낸 프랑스의회 제출용 탄원서로 더욱 유명하다.

*** 佛바스티아 풍자 탄원서

그 우화(寓話)적 탄원서는 프랑스 양초제조업 및 조명관련제품 제조업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국내양초 및 조명관련 제품시장을 황폐화하고 있는 '외부 경쟁자'에 대해 프랑스 국회가 적절한 법적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외부경쟁자는 다름 아닌 태양이었고 그가 탄원서에 제시한 정책대응은 햇빛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법으로 '모든 창문을 밀폐하고 집안의 커튼 구멍이나 틈새를 빠짐없이 막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이러한 조치를 취해주면 프랑스 국내 양초제조업과 조명관련제품 업계는 물론이려니와 이들에게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는 모든 프랑스업계에까지 그 혜택이 갈 것이라는 보호무역론자들의 보편적 논리를 그럴듯하게 펼치고 있다.

실제 오늘 우리나라 국회와 정치권에 이와 비슷한 탄원서가 제출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될까. 특히 많은 표를 갖고 있는 이해집단의 탄원일 경우의 반응이 더욱 궁금하다.

과연 많은 표를 좌우할 수 있는 집단의 탄원이지만 내용의 무리함을 지적하고 해당업계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추후로 이월시키게 될 임시방편적 대응이 아닌 근본대책 마련에 나서는 용기와 지혜를 보여주게 될 것인가. 그런데 불행히도 문제는 지난 수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정치권이 보여줄 반응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얼마 전 카타르 도하에서 세계무역기구(WTO)회원국들의 합의에 따라 뉴라운드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나라가 불과 한세대 남짓한 기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WTO의 전신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하의 자유무역체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WTO체제하의 자유무역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를 펴나가야 한다는 것도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뉴라운드의 출범으로 이제 머지않아 쌀 수입의 관세화와 농수산물시장 및 각종 서비스시장의 개방과 이들 산업보호를 위한 현존시책들의 지속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농어민과 해당산업 근로자들은 산업구조조정이란 큰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해당 농어민과 업계가 정부와 정치권에 적절한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로 계속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은 예상되는 일로서 이미 목하 진행 중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과정과 협상 종결 이후에 저지른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지난번 UR협정체결시에 이미 우리 쌀 시장의 개방과 관세화는 기정 사실화된 것이었다. 단지 일정기간 그것을 유예 받은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쌀 시장개방은 영영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쌀 산업과 농가의 근본적인 대응책 대신 임시방편적인 미봉책으로 쌀의 공급과잉을 조장하게 되어 근본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이다.

*** 시장 개방 중 ·장기 대응을

예를 들면 국제시세의 5~6배에 달하는 국내 쌀 가격 지지와 비료대금 보조가 WTO 체제하에서의 우리 쌀 농가의 장기 대응책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쌀의 공급과잉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 사실 아닌가. 지금이라도 하루속히 중.장기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쌀 시장의 관세화 유예가 끝나는 2005년에 가서 쌀 생산농가의 경(硬)착륙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정치권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미래지향적인 쌀 문제 해결방안 모색에 적극 참여할 때이다.

사공 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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