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카르노」의 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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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2일 열린 국민협의회에서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마침내 1963년 이 국민협의회가 자기에게 부여해준 「위대한 혁명지도자」의 칭호와 종신 대통령직을 필요하다면 버릴 용의가 있다고 시사했다.
이로써 지난해 9·30미수 「쿠데타」 사건이후 금이 가기 시작했던 「수카르노」 대통령의 권능은 결정적으로 퇴세에 놓이게 되었다. 동시에 이것은 「나수티온-수하르토」 체제의 강력한 정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20일부터 개최되어왔던 이 국민협의회의 회의경과를 더듬어 볼것 같으면, 동협의회는 비록 차기총회에 의한 정식협의회가 성립할 때까지의 잠정적 협의회 성격을 가진 것이긴 하나 전 국방상 「나수티온」 장군을 만장일치로 의장으로 선출하는 한편 「수하르토」 육군참모총장에게 정치적 전권을 이양했던 지난 3월 11일자 「수카르노」 대통령 명령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준했던 것이다.
이 3·11명령이라는 것은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데 필요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수하르토」 장군에게 있다는 것을 「수카르노」 대통령 이름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3·11명령이후에 있어왔던 일련의 동태 즉 「유엔」 복귀 용의선언, 「말레이지아」 분쇄정책의 포기 및 화해의 개시 등은 모두가 「수하르토」 장군의 책임아래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전술한대로 15일간의 일정으로 지금 열리고 있는 이 협의회는 잠정적인 성겨의 협의회이며 필요하다면 종신 대통령직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수카르노」 대통령의 시사가 지금 당장의 그의 실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의 결정적인 실각이 앞으로 있을 총선을 통해 성립할 임시국민협의회아닌 정식국민협의회가 이 문제를 결정할 때까지 유예되는 것이라곤 하지만 이제 「인도네시아」 권력질서속에서 제2의 순위를 「나수티온」 장군이 그리고 정치적 전권을 「수하르토」 장군이 장악한 이상 그의 권토중래는 거의 무망하다. 「수카르노」 대통령 자신은 종신 대통령직을 결코 자진해서는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비치고 있는듯하나 그의 사실상의 거세를 의심할 여지는 지금 없는듯하다. 하기는 현재의 움직임으로 보아서는 「나수티온-수하르토」 「팀」도 그의 의사에 반하여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카르노」 대통령을 몰아낼 뜻은 없는 것같다.
하지만 그가 권력의 정상에서 어떤 형태로 물러앉을 것이냐는 것만이 문제로 남겨진 오늘,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기복에서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은 차라리 그 우선회가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이미 지극히 편향적이었던 대중공관계에 수정을 가해오기 시작했던 「인도네시아」의 우선회의 문제는 그것이 남태평양의 평화·안정문제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고 「아시아」 전체의 기존균형과 평화·안정문제까지 연결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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