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청정한 삶·예술의 길 깨닫게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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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목사가 젊어서 쓴 『에세이 예수의 죽음』(종로서적) 은 독백체로 쓴 예수의 일대기입니다. 성자도 슬픔과 분노와 좌절뿐 아니라 사랑과 피흘림으로 인간임을 알게 합니다.

운명이 그이와 저를 만나게 해준 것은 뒷날 일이지만, 그이는 상처많은 무명화가인 저의 적의와 분노를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일로 조금씩 버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최근 오강남 박사의 『예수는 없다』(현암사) 는 예수의 죽음을 종교학적 해석을 통해 옹호하고 있는 듯싶었습니다. 두 책은 혈연적으로 근친(近親) 인 듯 보입니다.

한 20여년 판화가로 살아오면서 종교서적류를 주로 읽습니다. 1980년대 말 제 판화의 경향이 바뀐 이후 생활과 선(禪) 이 중심역할을 하게 된 데도 저만의 책읽기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내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했다는 말이고, 이 세상과 인간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운서주굉이 쓴 『죽창수필』(불광출판사) 이 아름다운 문장이라 하고, 청정한 삶을 살려는 이들을 위한 지혜서라고 느낀 데는 연관스님의 번역이 큰 몫을 하였을 듯합니다.

사랑을 가벼운 즐길 거리로 여기는 세태에는 "사랑과 미움이 꿈 속 일이며, 허공에 핀 꽃과 같아서 본래 진실한 것이 못된다"는 말씀이 헛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르건 늦건 삶의 본모습과 인생의 깊은 뜻을 묻게 될 날이 누구에게나 한번은 올 것입니다.

제가 『조주록』과 『백장록』을 겨울밤 머리맡에 뫼시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때로 노장들의 말씀에 버릇없는 말대꾸로 판화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조주록』에 "무엇이 조사(祖師) 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는 학인의 질문에 "뜰 앞에 잣나무니라"하시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쿠! 저 노인네 잣나무 다 죽인다"하는 군소리를 보탰습니다. 이럴 때 고전 속의 조주노인은 살아서 제 집을 찾아오신 손님이십니다. 또 한권 『백장록』은 백장선사의 행적과 말씀을 적은 책입니다.

아시듯이 그이는 노동과 선을 아우른 중국 선종의 새 전통을 만드신 분이기도 합니다.노년에 호미를 감춰둔 학승들에게 "내 아무런 덕이 없는데 어찌 남에게 폐를 끼치겠는가?"하시고 하루를 굶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판화를 새기는 틈틈이 농사를 지으면서 언제나 그이들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삽니다. 쉽고, 따뜻하고, 그리고 깊은 것이어야 온전한 예술과 예술가의 길이 된다는 믿음을 그이들에게서 얻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옛 거울들(古鏡)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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