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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테러」의 진범은 누구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박한상 의원 「테러」사건의 진범이라고 경찰이 단정했던 임은 검찰 수사에서 자기가 경찰이 조작한 범인이라고 자백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계속하여 임이 진범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서울지검 한 차장검사는 임이 조작된 범인이라고 자백한 진술만 가지고서는 『검찰로서 동사건을 허위 조작된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신중한 견해표명을 했다고 들린다. 이 사건에 있어서는 경찰자체가 범인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으니 만큼 앞으로 임이 진범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이제 주로 검찰의 수사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게 됐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어떻게 판명되건 간에 우리는 임이 진범이 아니라는 유력한 반증이 나타나고, 또 임 자신이 경찰이 조작한 가짜범이라고 자백함으로써 경찰이 사건을 조작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받고, 그 위신이 크게 손상되었다는데 대해 우선 유감 됨을 금할 수가 없다. 만약에 임이 경찰이 조작한 범인이라는 것이 확실히 드러난다고 하면 경찰은 왜 진범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이처럼 교묘한 연극을 일부로 꾸미려고 했던가가 근본적인 문제로 된다.
박 의원에 대한 「테러」사건은 정치적으로 파문을 일으켜 세인이 그 수사의 진전과 처리를 주목하고 있으니 일선 경찰로서 체면을 세우기 위해 가짜범인을 진범으로 조작하여 일시를 호도해 버릴 심산이었는지, 혹은 진범을 잡아내게 되면 정치적으로 더 큰 말썽이 생겨날 우려가 크기 때문에 가짜를 진범으로 대신시키려 했던 것인지 갖가지 불투명한 억측을 자아내게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임을 진범으로 조작한 것이 바로 경찰이었다고 하면 그 책임의 한계는 단순히 일선 경찰에 끝나는 것인지 또는 보다 더 고위층까지 올라가는 것인지가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런 조작의 정치적인 동기 역시 예리한 추궁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저 우리 사회에서는 최근 1년 동안 개탄할 「테러」사건이 빈번이 일어났건만 그중 어느 하나도 시원히 해결된 것이 없다. 작년 8월에 일어났던 『언론인 및 야당인에 대한 심야「테러」사건』은 합동조사를 거치고 국회특위의 조사까지 받았건만 아직도 사건은 오리무중이요, 범인은 하나도 색출되지 못했다. 『최기자에 대한 「테러」사건』에 있어서도 당국에서 범인이라고 자백하고 나선 자가 생겼다고 하지만 피해자는 그런 자를 모른다고 하여 이 역시 석연치 않은 감을 일반에게 주고 있다.
위와 같은 일련의 「테러」사건에 대한 수사의 부진 내지 무능은 과연 우리 정부가 치안을 유지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능력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정치성을 농후하게 띠었다고 보여지는 「테러」사건을 해명하고 「테러리즘」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성의를 갖고 있는가 조차를 의심케 한다. 특히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테러」의 피해자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언론인이나 야당계 인사들이라는 것이요, 사건이 생겨날 적마다 범죄가 국가권력의 묵인이나 비호 가운데서 행해지지 않았나 하는 억측이 항간에 떠들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억측이 불행히도 적중하여 야당인사 및 언론인들에 대한 정치「테러」가 과잉충성분자에 의해 행해진 것이고 국가권력이 이를 적발, 처벌하기는커녕 그 은닉보호는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도, 법치주의의 기본원칙도 그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리고 있다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부와 여당이 이런 의혹을 불식하고 그 위신을 회복키 위해서도 「테러」범 수사에 성의와 능력을 다 해주기를 요망함과 아울러 범인을 조작하는 따위의 경찰 밑에서는 선량한 시민이 불안해서 살수 없다는 점을 경고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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