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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풍류〉(14) 임실수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마을 앞 감나무는 몇 백년이 되었을까? 두 어 아름이나 되는 나무등걸, 해가 바뀔수록 속은 비어 가지마다 앙상하다.
그래도 그 끝에 매달린 신록의 무리에는 감꽃이 새롭다.
임실군 육웅면 옥전2리 (일명 가랏-가전)는 남양홍씨의 마을. 여름이면 유목의 녹음에 덮여있다. 여기는 예부터 수시가 유명하다.
홍씨가 이 마을서 살게된지는 약 3백70년전, 임진왜란때 홍참판이란 사람이 이곳에 피난와 살면서 전원에 감나무를 심은 것이 이 수시의 시초다.
그때 여기서 나는 감을 서울 친척에게 선사하곤 했는데 그 맛이 얼마나 진귀했던지 임금에게 진상하여 유명하게 됐단다. 그후부터 해마다 수시는 이 고을의 진상품이 되어 왔다.
이 감이 익어 홍시가 되면 감전체가 감로수로 화하여 앞에 놓고 보면 터질 듯 손이 간다. 이래서 수시라 일컬어왔는데 어느 감처럼 쪼개먹지 못한다.
구멍을 뚫어 쪽쪽 빨아먹는데 한맛이 더난다. 거기에 씨하나 없고 크기마저하다. 또한 홍씨 가문의 특산물이라 하여 그 본을 떠서 남양수시 라고 한다.
이 마을에 재배되는 감은 수시를 비롯, 먹감·반시 등 10여종이었다. 그 중에 그 유명한 수시는 겨우 10여 그루뿐, 연 생산량은 50접 미만이다. 작년시세로는 한 접에 4백원.
이 감을 둘러싸고 갖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이조말엽에는 운수(임실의 고명)원님이 직접 진상품을 선정했다고도 하며 왜정 때에는 일본사람이 이 감을 독점하여 가져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은 이 감을 선조가 남긴 유일한 보물로 삼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김해원예 시험장에서 시험묘목을 채취해간 일이 있어 전국적으로 재배도 가능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마을 근처에서 이감을 접붙여 길러도 토질 관계인지 그 질이 원「수시」에 비길 수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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