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얌체」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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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같은 말이지만 「염치」와 「얌체」는 아주 다른 말이다. 일본친구들은 어느 쪽이내 하면 「염치」가 아니라 「얌체」에 속한다. 이에 해당되는 일본말이 없어 좀 섭섭하지만, 아마 일본인 자신들은 「얌체」의 뜻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세아· 태평양지역각료회의에서는 공용어를 영어로 정했다. 그런데 일본대표인 추명 외상은 자국어인 일본말로 연설을 했다. 이런 짓을 바로 「얌체」라고 하는 것이다. 누구는 제나라말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영어가 편하고 좋아서, 그리 민족의식이 없어서, 제나라 말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세아인 끼리 모인 자리에서 왜 하필 영어를 공용어로 삼았느냐? 고 핏대를 올리는 소아병적 국수주의자가 있을지 모르나 그건 단순한 편법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각국대표들이 서로 통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제3국 언어란 뜻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공용어로 정했으면 그걸 지키는 것이 국제회의의 관례이다.
그와는 좀 다른 얘기지만 한국의 문화재를 노리는 일본상인들의 경우도 역시 「얌체」에 속한다. 훔쳐갔던 문화재도 돌려주고 있는 이 판국에 여전히 돈으로 한국의 문화재를 거둬가려는 친구들의 그 상혼이 얄밉다. 최근에 일어난 문화재반출(주로 일본)사건만 해도 수십 건 가까이 된다. 한국의 문화재를 탐내는 일인들의 「얌체」는 멀리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원성대왕 때 일본의 문덕왕은 신라의 국보였던 고파식적의 피리를 1금 오십량을 주고 팔라고 했다. 그것이 거절되자, 또 금 천냥을 줄 터이니, 한번 보기만 할 테니 빌려 달라고 청해왔다.
왕은 역시 거절을 했고, 천냥을 내겠다는 사신에 거꾸로 삼천냥을 주어 돌려보냈다. 인심이 후했던 우리 왕을 생각할 때 한결 그들의 「얌체」가 밉다.
어찌 이런 일 뿐이었겠는가? 요즈음 일본 관광객들이 살도해오고 있지만, 돈을 풍성하게 쓰는 친구들은 드문 모양이다. 그러고서도 「서비스 」가 나쁘다고 돌아갈 때는 한마디씩 불평을 한다는 거다. 역시 섬나라 사람들이라 「트인」데가 없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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