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구청장 갈등 “서초구는 만신창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박성중(左), 진익철(右)

“때아닌 공천 후유증으로 서초구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요즘 서초구 관계자들을 만나면 한숨부터 내쉰다. 구청장을 둘러싼 각종 고소·고발 사건 때문이다.

 수면 아래 잠겨 있던 공천 관련 갈등은 최근 한 청원경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이 “구청장 관용차량 주차안내가 늦었다는 이유로 강추위에 24시간 동안 야외 근무하도록 징벌을 받은 청원경찰이 동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진익철 구청장 측은 “차기 서초구청장을 노리는 몇몇 인사가 짜고 현 구청장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벌인 언론 플레이”라며 허준혁 전 서울시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진 구청장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청경이 사망한 것은 맞지만 지병 때문”이라며 “허 전 시의원은 진 구청장과 민선 5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서초구청장 공천을 신청했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공천 갈등이 사건의 배후라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앞서 허 전 시의원은 청경의 죽음과 관련한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바 있다.

 진 구청장은 허 전 시의원을 고소하기에 앞서 최근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도 배임·횡령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박 전 구청장이 재직 당시인 2009년 5000만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다.

 진 구청장은 “2010년 취임 직후부터 관련 공무원 실명으로 투서가 수차례 들어와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며 “부서원에 돌아갈 돈을 박 전 구청장이 착복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전 구청장은 “터무니없는 혐의”라며 “만약 1만원이라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구청 앞에서 할복하겠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 “경찰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무고로 고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겉으로는 전·현직 구청장 간의 평범한 송사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여기도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두 사람은 행정고시 23기 동기로 서울시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먼저 서초구청장을 지낸 박 전 구청장은 2010년 재선에 나서려 했다. 그러나 진 구청장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구청 주변에서는 행시 23기 동기인 고승덕(당시 한나라당·서초을) 전 의원이 진 구청장을 밀어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박 전 구청장은 2012년 총선에서 서초을 공천을 노렸으나 또 실패했다. 박 전 구청장 측은 “고 전 의원과 진 구청장이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두 전·현직 구청장 사이의 악연은 이게 다가 아니다. 2011년에는 진 구청장이 돈을 받고 마권장외발매소 허가를 내줬다는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결국 무혐의로 드러났지만 진 구청장 측은 의혹을 제기한 발원지를 박 전 구청장으로 보고 있다.

 박 전 구청장 측은 “박 전 구청장이 박근혜 당선자 대선캠프에서 일했는데 혹시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 들어갈까 봐 이를 막기 위해 진 구청장 측이 말도 안 되는 혐의로 고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호정 서초구 시의원은 “강남·서초 지역은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으로 여기니 공천을 둘러싸고 각종 마타도어가 판친다”며 “다른 자치구에서는 주민들 이목이 부끄러워서라도 이렇게까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