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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버리지 못한 게 죄(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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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본선 16강전)
○·박정환 9단 ●·중원징 6단

제9보(105~118)=‘버린다’는 이 한마디는 바둑에선 아주 중요한 의제이고, 그건 또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삶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보에서 말했듯 ‘바둑10결’에 ‘버리라’는 항목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중원징 6단도 고수인 만큼 그걸 모를 리 없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습니까. 고수에게도 미련이라는 게 있지요. 그 바람에 백△의 통렬한 공격을 받게 됐습니다. 애당초 흑▲ 6점을 포기했으면 그 가치는 ‘12집+알파’ 정도에 불과했지만 일단 움직인 이상 이제는 버릴 수 없습니다.

 105, 107로 달아납니다. 무겁습니다. ‘적진에선 가볍게’라는 지침은 목숨과 직결되는 교훈이지만 이제는 무겁더라도 모조리 끌고 가야 한다는 게 흑의 고통입니다. 백의 박정환 9단은 물 만난 고기가 됐군요. 108, 110으로 맛 좋고 두터운 곳을 두며 서서히 흑을 압박해 갑니다. 111은 손 빼도 ‘참고도’에서 보듯 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로 엄청나게 당합니다. 줄잡아 ‘선수 12집’은 되니까 흑▲ 6점보다도 훨씬 크지요.

 중앙이 부평초가 되면서 백은 112, 114로 부수입을 올립니다. 거진 죽었던 4점이 살아갔습니다. 그러고도 중앙 흑은 여전히 붕 뜬 신세라 여정이 고달프기 그지없습니다. 116에서 보듯 모든 작전의 주도권이 백에 넘어갔습니다. 흑은 116의 칼 끝이 중앙을 향하고 있으므로 자꾸만 웅크려야 하고 백은 더욱 강하게 압박합니다. 흐름이 이렇게 풀리면 설령 이긴다 해도 바둑 두는 게 고통이지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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