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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출판] '아버지의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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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산/릭 리지웨이 지음, 선우중옥 옮김/화산문화, 1만1천원

생물이 살 수 없는 6천m 이상의 히말라야 고산지대. 암벽의 수직선과 만년설의 수평선이 교차하는 그 곳에는 흑과 백의 무채색만이 존재한다.

현대적인 의미의 알피니즘은 18세기 알프스에서 태동했고 20세기 들어 히말라야 8천m 고봉에 대한 등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수많은 산악인들이 목숨을 바쳤다. 평지보다 공기도 희박하고 죽음을 담보로 한 히말라야의 고봉을 인간은 왜 오르려고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산악인이자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였던 릭 리지웨이가 쓴 '아버지의 산'은 히말라야에 묻힌 자신의 친구(조너선 라이트)를 찾아 친구의 딸(아시아)과 함께 히말라야로 떠난 90일간의 순례기다.

산악인이자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였던 조너선은 1980년 10월 14일 아내와 16개월 된 딸을 남기고 28세 젊은 나이로 중국 쓰촨(四川)성의 고산인 민야 콘카(7천5백56m)에서 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조너선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했었다.

책은 민야 콘카에서 눈사태로 조너선이 목숨을 잃었던 순간을 회고하는 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자신이 죽음과 마주쳤던 60초의 순간, 그보다 더 길었던 조너선이 죽기 전 20여분의 순간을 감성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조너선의 죽음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저자는 평생 친구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버리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조너선의 딸의 후견인으로, 아시아가 성장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다. 아시아는 성인이 되던 99년 저자에게 아빠의 무덤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아빠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아시아에게 아빠를 어떻게 알려줄 것인가. 20년이 지난 지금 조너선의 무덤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마침내 저자는 20년 전 조너선과 세웠던 계획을 따라 창탕고원과 불교도들의 순례지인 영봉(靈峰)카일라스산, 전인미답의 아루분지를 거쳐 민야 콘카를 찾아가기로 한다.

90일간의 일정으로 떠났고 우여곡절 끝에 조너선의 무덤을 찾는다.

"매일 매일을 내 생애 유일한 날처럼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현재의 현실을 경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라는 조너선이 남긴 일기 구절과 함께 책은 끝난다.

이 책은 논픽션이면서도 히말라야의 만년설, 그 곳에 오르고자하는 인간의 열정,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이야기 등을 치밀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어 산악인이 아니라도 쉽게 읽힌다.

티베트 불교에 심취했던 조너선의 입을 통해 눈으로 보이는 세계 너머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에서는 책의 깊이를 실감하게 된다.

역자인 선우중옥(62)씨는 도봉산의 암벽 등반루트인 '박쥐코스'를 60년에 첫 등반했고 63년에는 이본 취나드와 함께 북한산 인수봉의 '취나드코스'를 초등한 재미 산악인이다.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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