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택시법, 공은 다시 국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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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택시법(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지난해 대선을 앞둔 여야가 30여만 명의 택시업계 종사자 표를 의식해 만들어 포퓰리즘 논란을 일으켰던 택시법이 국회에서 다시 논의된다.

 정부는 이날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택시법 재의요구안(거부권 행사안)을 의결했고, 이 대통령이 재의요구안에 서명했다.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건 재임 중 처음이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로는 72번째 대통령 거부권 행사다. 이 대통령은 서명에 앞서 “글로벌 코리아 시대를 맞아 국제규범에 맞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을 할 수는 없다”며 “택시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택시법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다음 정부를 위해서라도 바른 길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정부는 택시법 대신 택시에 대한 재정지원, 조세감면 등의 내용을 담은 ‘택시지원법(택시운송사업 발전을 위한 지원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마련하지 않았다. 당초 택시법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분류해 택시업계가 유가 보조금 지원, 부가가치세·취득세 감면, 영업손실 보전, 통행료 인하 및 소득공제 등으로 연간 1조9000억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여야는 반발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국회 의사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라며 “(국회의원) 222명이 찬성을 해서 (법안이 의결)된 만큼 어지간하면 수용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수용을 못하는 이유를 정부가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도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택시법은) 이 대통령도 5년 전에 공약했던 사안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후보자 시절 여러 번 구두로 공약했다”며 “사실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택시법을 국회에서 다시 의결하는 문제에 대해선 여야 간에 입장차가 있었다. 민주당은 “재의결을 반드시 추진하겠다”(박기춘 원내대표)고 밝혔지만 새누리당은 “정부의 특별법(택시지원법) 내용을 보고, 택시업계나 민주당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이한구 원내대표)고 했다.

 택시법은 올 예산안이 처리됐던 지난 1일 새벽 255명이 표결에 참여해 222명(87.1%)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회가 재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151명)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공개투표였던 첫 의결과 달리 재의결 투표는 무기명으로 진행된다.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느라 찬성표를 던졌던 의원들 중 상당수가 반대표로 돌아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재의결 여부는 박근혜 당선인의 의중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택시법 제정 자체를 공약하지는 않았지만 택시업계의 근무환경과 처우개선 등은 약속했었다. 박 당선인의 핵심 측근은 “택시기사의 처우 문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사안”이라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정부에서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지 못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조속한 시일 내에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와 국회가 타협안을 만들어 내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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